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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규용 전 농림부 장관 "충북과 농업 위해 살겠다"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돌직구 장관'
수십년 공직 평생 농업 분야 '한우물'
퇴임 후 로컬푸드본부 명예회장 맡아

  • 웹출고시간2013.07.14 19:25:3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서규용. 그는 참 독특한 인물이다. 고위 공직자로선 보기 드물게 한 평생을 농업 분야에 바쳤다. 농림부 장관 시절 출입 기자들로부터 '돌직구 장관',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뜻을 한 번 세우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업무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이런 그가 고향 충북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보고, 듣고, 익혀온 모든 것들을 고향 발전을 위해 내려놓기로 결심하면서다.

1948년 청주 사천동에서 태어난 그는 덕성초(6회)와 청주중(37회), 청주고(39회)를 졸업했다. 고려대 농학 학사와 미국 농무성 대학원, 국방대학원 행정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72년 국가기술고시 합격 후 오로지 농업 분야에서만 일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생명의 근간인 농업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2011년 6월2일부터 올해 3월11일까지는 60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이 기간 가장 큰 행적은 '한미 FTA' 체결이었다.

"참 말이 많았지요. 우리나라 농업이 죽는다, 농민들을 배신했다는 등. 하지만 시대적 흐름 상 FTA를 체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37개 나라와 FTA를 체결했고, 전 세계 60% 국가와 자유 무역을 하고 있어요. 어느 분야든 FTA를 거절하면 살 수 없는 구조가 된 거죠. 이제 농업은 FTA를 전제로 해서 발전해야 합니다. 토지 이용형 농업에서 벗어나 자본·기술 집약형으로 변한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봅니다. 충북의 경우 원예와 축산 분야를 키워야죠."

그는 지난 2002년 농림부 차관 때 국내 최초로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사업'을 도입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쌀 생산 농가에 그해 평균값의 차액을 85%까지 보전해주는 제도다. 기초 식량의 안정적 생산 기틀을 유지해 자급자족 원칙을 지키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장관 재직 시엔 밭작물직불제로 확대했다. 2002년 작물보험제도, 1999년 친환경농업육성법도 그의 작품이다.

서 전 장관은 퇴임 후 로컬푸드운동본부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2009년 국내 농산물 애용 운동 차원에서 본인이 만든 단체다. 그는 "국내 농산물 애용은 WTO(세계무역기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없었다"며 "우리나라 농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의 지원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고 했다.

서 전 장관은 퇴임 전 충북을 자주 찾았다. 그 탓에 "차기 선거를 고려한 정치적 행보 아니냐"는 뒷말을 무수히 들어야 했다. 당시 그는 침묵했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네요. 아시다시피 제 별명이 '월화수목금금금'입니다. 충북을 포함해 전국 안 간 곳이 없어요. 퇴임을 앞둔 마지막 주에도 그동안 못 가본 강원도 양구군을 다녀왔습니다. 재임 기간 단 하루도 주말에 쉬지 않고 전국을 돌았는데, 유독 충북을 많이 찾는다고 오해가 생기더라고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사랑하는 고향 충북을 챙기는 게 큰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허허."

그러면서도 내년 도지사 출마설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는 말로 모든 걸 대신했다. 출마 선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출마하겠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충북과 농업인을 위해 혼신을 다해 일하겠다"고 했다.

서 전 장관은 '돌직구'란 별명을 유난히 좋아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말이 아닌 발로 뛰는 것을 좋아했고, 계획보단 실천을 중요시했다. 직원들에게 '돌직구' 발언도 서슴지 않았지만, 모든 걸 이겨낸 직원들은 요직에 중용했다.

"지금까지 일을 추진하면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직원들이 힘들어했죠. 다만 정책을 결정할 땐 독단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소소한 의견까지 다 들었죠. 정말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 그게 제 철학 '돌직구'입니다. 정치도 그럼 점에선 마찬가지 아닐까요?"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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