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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우덕순 의사 유묵 및 사진 전시회

우덕순(禹德淳)의사(義士)를 아시나요

  • 웹출고시간2013.06.04 14:14:07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제천문화원(문화원장 이광진)이 3회 전국 의병의 날을 맞아 안중근·우덕순 의사의 유묵과 사진전을 마련해 시민들에게 의병의 후손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기로 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7∼16일까지 열흘간 제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열리며 (사)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후원하며 오픈식은 7일 오후 2시 시민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물은 유묵 21점과 사진 80점으로 안 의사의 가족사진과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의사의 의거직전 사진, 안 의사의 순국직전의 사진 등 좀처럼 보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해 양반가의 자제로 유학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으며 백번 김구선생과 동문수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독립투쟁을 한계를 느낀 선생은 28세 되던 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무장투쟁을 위해 12명의 동지와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하고 제천출신 의병대장 의암 유인석으로부터 독립특파대장의 직함을 맡고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저격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선생은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여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으며 선생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우덕순 의사는 제천 출신으로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해 1907년 안중근의사와 합류해 국내로 진공해 경흥 회령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 방중 첩보에 우덕순 의사는 채가구 역에서,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처단하기로 했으나 이토를 태운 열차가 채가구 역에 서지 않는 바람에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의사에게 처단됐다.

러시아헌병대에 체포돼 안중근의사와 함께 여순에서 재팜을 받고 5년형의 옥고를 치른 후 북만주 일대에서 교육, 종교 사업으로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다.

독립 후에는 대한민국당 최고위원과 건국사업에 이바지했으나 1950년 6.25전쟁 중 인민군에 의해 서울에서 처형됐다.

만약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채가구 역에서 섰다면 이토는 우덕순의사의 총탄에 숨을 거뒀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와 관련된 사항은 제천시문화원(043-646-3646)으로 하면 된다.

제천 / 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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