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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5.28 15:16: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우경제

충주시 회계과 경리담당

“어머니…”부르기만 해도, 아니 생각만 하여도, 참으로 가슴 시린 말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한 평생 자식을 위해 온갖 고난을 혼자 감당하시느라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주시고, 남김없이 소진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식들이 유장하게 창천을 비상하기를 소망하시느라, 거기에 힘을 나눠주시느라, 당신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빈 껍질이기를 스스로 자처하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모곡(思母曲)’들이 한결같이 애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를 제대로 감당할만한 ‘사모곡’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오늘도 여전히 그 사모곡의 헌사가 계속되는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이다.

가령, 이런 ‘사모곡’은 어떤가?

‘자식 된 자의 도리나 소망으로는 그 과거 속의 노모가 더 이상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언제까지나 그 물 고운 색동옷 꿈에 싸인 꽃처녀 시절에만 머물러 계시기를 빌어 마땅하리라. 하지만 당신의 긴 기억 여행은 이제 썩 많은 날을 이어가실 기력이 없어 보이신다. 그 기나긴 지난 세월 노인은 당신의 모든 것을 자식과 이웃들에게 다 쏟아 주시고 이제는 빈 육신과 순백의 영혼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버리신 때문이다.’

작가 이청준의 장편 ‘축제’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생의 끝자락에 선 노모에 바치는 자식의 지극한 사모곡의 한 대목이다. 특히 “기나긴 지난 세월 노인은 당신의 모든 것을 자식과 이웃들에게 다 쏟아 주시고 이제는 빈 육신과 순백의 영혼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버리셨다”는 작가의 진술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고 눈물겹다.

어디 작가 이청준의 경우뿐이겠는가. 세상의 하고많은 모자들의 이야기를 작가가 대신해서 쓴 것이고, 그렇기에 그 이야기들이 더욱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 아닌지. 굳이 다른 데서 찾을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 자신의 어머니부터 당연히 그러하지 않은가?

내 어머니도 늘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못하시는 분이었다. 6남매를 낳아 잘 길렀음에도 불구하고 더 주시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안타까운 마음이셨다. 그러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상에 누워 계신 지 어느덧 10년, 처음엔 하늘도 참 무심하다 싶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선량하게 살아오신 내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차츰 장성한 자식들한테 어머니께서 좀 대접을 받고 싶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도 안하시고 손발도 제대로 못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모든 것을 묵언으로 청하셨던 것이다. 어머니께서 그리 하지 않았으면 자식들이 더욱 불효자가 되었을 것을 어머니께서 미리 막아주신 것이었다. 그 동안 너무 고생만 하셨으니, 자식들에게 늘 주시기만 하셨으니 이제는 좀 편하게 해드리라는 계시 같기도 했다. 그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울 어머니는 점점 작아졌다.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에 나오는 것처럼 손주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어머니는 점점 작아졌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나누어주던 것을 이제는 손주들에게도 나눠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린 울 어머니를 뵐 때마다 손주들은 할머니 손을 꼭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속삭인다. “할머니 어서 일어나서 달나라에서 토끼가 방아 찧는 얘기 해 주셔야지요.”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더 커지고 어머니는 더 작아지신다. 난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되뇐다. “엄마, 더 작아지시면 안 돼요. 자식된 도리 좀 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셔야지요. 힘내세요!”

가정의 달 5월이 지나고 있다. 절절한 ‘사모곡’을 적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아마도 어머니의 손길을 감당할만한 자식의 붓길이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어머니 마음 가까이 가기에 세상의 자식들은 너무 어리거나 어리석기 때문이다. 이제는 5월이 지나더라도 계속되는 ‘사모곡’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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