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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5.19 17:21:1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김종률

민주당 충북도당위원장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4주기가 다가온다. 4년 전 기억들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2009년 딱 4년 전 이맘 때 나는 고인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고인에게도 내가 마지막 방문객인줄은 나중에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해서 권양숙 여사와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됐다.

그 즈음 나는 미국 출장일정이 있었다. 뉴욕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저녁 만찬이 방문 이틀째 저녁 일정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반 총장에게 노대통령의 인사도 전할 겸 봉하마을 사저로 노대통령을 예방했다. 고인이 당시 참여정부의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했는지 나는 익히 아는 터였다.

노 대통령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만 돌이켜 보면, 고인은 대통령이었을지언정 생활인이나 사업가로는 낙제점이었다. 물 사업, 식당 이것저것 손대는 일마다 말아먹지 않은 적이 없고, 그때마다 권여사의 속을 태운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러나 노 대통령은 정말 대통령직만큼은 국민과 나라를 위해 성심을 다해 수행했다고 회상한다.

2004년 초여름 어느 일요일인가 청와대에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비서관 출신 S 국회의원과 점심을 같이하게 됐다. 나는 밥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노대통령에게 역사에서 꼭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라고 말했다가, 노대통령이 먹던 밥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언성을 높이며 항변하듯 울분과 고뇌를 토로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물론 그때는 탄핵소추로 정지됐던 대통령직으로 직무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로 국정이 꼬이고 어려운 처지이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면박 당한 것만 무안하고 은근히 부아가 나기도 했으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 느꼈을 고독과 고뇌는 고인이 없는 지금에 와서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기득권 의식, 아직도 반칙과 특권이 만연하는 주류의, 역사와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기란 참으로 지난한 일임을 이제와 더욱 절절하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책은 '한국의 야생화'였다. 내가 출국인사 겸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하여 서재로 들어섰을 때 고인은 카세트테이프로 금강경을 틀어놓고 이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뿔테 안경을 책갈피에 내려놓으며 대뜸 책이야기를 했다.

"모르는 야생화가 참 많네요. 정말 예쁩니다. 김 의원도 한 번 꼭 보세요"

고인이 봉하마을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 소식은 뉴욕 방문 이틀째 거기 시간으로 늦은 오후 무렵 전해졌다. 방문단 일행 중 나를 포함한 일부는 반기문 총장과의 만찬 일정도 취소하고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다시 봉하 마을에 내려가 서재에 들어섰을 때 고인이 이틀 전 나를 맞이하면서 책갈피에 안경을 내려놓은 그대로 한국의 야생화 그 책은 펼쳐져 있었다. 한 장도 더 넘겨지지 않은 채.

그때 고인은 나를 맞으면서도 마음은 이미 뒷산 부엉이바위에 가 있었던 것이었다. 내색 없이 의연하게 방문객을 맞는 그의 심정은 또 얼마나 내면 깊은 곳에서 요동쳤을까. 공권력의 이름으로 야비하고 더욱 교묘하게 압박해 오는 권력에 맞서 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봉하마을 사저를 나와 마지막 가는 길 집 앞 골목길 잡초도 뽑아보고 구석에 피어난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며,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그 먹먹한 표정, 뒷짐을 지고 구름을 밟듯 부엉이바위로 향하는 허허로운 그의 발길을.

4년 전 이맘 때 출국하기 하루 전 고인이 꼭 보라고 권했던 그 책을 이제야 펴든다. 마지막 먼 길을 떠나기 전 그가 눈에 넣었을 우리 산하, 들녘의 어디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을.

아, 마음속의 대통령, 노무현!

신록이 짙어지고 물빛이 깊어지는 요즘 그가 한 없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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