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 새겨진 글자는 대략 260여 자에 이르는데 지금까지 연구를 통해 모두 180여 자가 판독됐다.
이번 판독작업에서는 일부 논란이 됐거나 재판독한 글자가 10여 자, 새롭게 찾아낸 글자가 4자, 새로 추정한 글자는 6자로 대략 20여 자가 넘는 글자를 판독,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백제의 관등 '달솔達率'은 좌측면 아래쪽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함께 새겨져 있는 내말乃末·대사大舍 등 신라의 관등과 더불어 당시 정치적인 상황을 엿볼 수 있고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만들었으나 제작 실체가 백제 유민들과 무관하지 않음이 명확해졌다.
그동안 판독되었던 글자 중 판독결과 다시 바로 잡거나 새롭게 추정한 글자도 있다. 전면 3행 4줄의 '등'자는 '목木'으로 읽어왔는데 '등等'의 고어古語임이 확인됐고, 좌측면의 '정正'자는 맨 위쪽 가로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지止'로 수정했다.
우측면 오른쪽 아래의 '사진대사使眞大舍' 중 '진眞'은 '직直'으로 바로 잡고 뒷면 4단의 4행 3줄의 '도道'자는 도의 우변인 '수首'가 확실하지 않아 '통通'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롭게 찾아낸 글자로는 정면의 10~11행의 '화化'와 '입卄'자 등이 있다.
이 두자는 앞뒤의 글자와 이어져 뒷면에 조각된 화불化佛 20구를 자연스럽게 암시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에는 신라의 관등으로 '소사小舍'가 더 있음이 확인됐다. 정면의 글자는 다른 세면의 글자에 비해 일정한 자간을 유지하고 있고 매우 공을 들여 정결하게 새긴 점이 특징이다.
글자를 해독 방법은 정면→향좌측면(우측)→향우측면(좌측)→배면 또는 향좌측면→배면→향우측면→정면 순으로 읽어왔는데 이를 통해 정면의 글자가 갖는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정면의 글자를 먼저 해독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박물관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시 유물의 실사를 진행한 결과, 계유명전씨아미타불은 하단의 돌출된 촉의 크기(약 21cm)로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불비상'의 대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무인명불비상의 받침돌이 몸체인 불비상에 비해 크고 부조화스러운 면이 있어 한 조를 이루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 조사 결과 무인명불비상 받침돌의 촉 결합부인 오목한 홈은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의 촉 크기와 비슷하다.
따라서 '무인명불비상'의 받침돌은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의 받침돌일 가능성도 있다.
이를 종합한 내용은 특별전 도록에 게재해 23일 개막하는 특별전시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된다.
/ 김수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