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박일선

충북환경운동연대대표

남한강과 달천강이 합류하는 국가명승 탄금대엔 8천고혼위령탑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구하려고 출병했다가 신립장군의 '배수진' 실패로 왜군의 조총에 맞거나 달천과 견문산 샛강에 빠져 장렬하게 순직한 병장(兵長)의 넋을 담고 있다.

당시 조선최고 정보실이었던 충주 사고(史庫)는 불탔고 읍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신립을 믿고 피난하지 못한 충주백성들도 엄청난 살상을 당했다. 초토화된 충주에서 행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조선정부는 1602년 피해가 적었던 공주로 감영을 이전했다. 이로써 태조4년(1395년)에 설치되어 207년간 54개 고을을 다스리던 충주감영시대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영남대로와 남한강수운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충주는 한양과 경상도, 강원도, 충북을 연결하는 물류 중심지가 되어 임진란의 참화를 딛고 조선최고의 내륙경제문화 중심지로 성장해 나갔다.

김홍집 내각이 주도해 고종이 1895년 5월 26일 공포한 칙령 제98호에 의해 전국이 23부(府)로 변경될 때 충주는 20개 군을 관할하는 부청(府廳)소재지가 된다.

여기엔 진천과 용인, 원주, 평창 등 충북과 경기, 강원 내륙이 속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36호로 지방제도 개정건이 반포되어 23부가 13도(道)로 변경될 때도 충청북도 관찰부는 충주에 있게 된다.

일제침략이 노골화되던 19세기 후반, 충주는 동학의 거점이었다. 세 분이나 되는 대접주(손병희, 신재련, 서장옥)가 맹활약했을 정도로 세력이 강성했다.

동학혁명 당시 충주 소태와 앙성 용포, 노은, 신니면 미륵댕이는 북접군 수만명이 노숙하며 청주로 이동했던 성지다.

부패한 봉건왕조 개혁과 척왜(排倭)를 위해 동학농민들이 충주와 음성, 괴산, 청풍, 단양, 진천 등에서 피 흘리며 관군과 일본군에 저항했다.

또한 1896년 1월 4일엔 유인석의병부대가 충주성을 탈환하기도 하는 등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투쟁은 들불처럼 이어졌다.

일제도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보복공격 등으로 의병활동에 참여했던 노은광산 광부 30명이 살해당했고 민가가 불타고 양민이 학살당하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다.

영국 '데일리 메일'의 극동특파원이었던 메켄지(F.A.McKenzie)는 위험을 무릅쓰고 1907년 충주의 한 산속까지 가서 의병을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에서 "충주와 제천 사이의 마을은 4/5가 불타버렸고 특히 제천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런 저항으로 안정적인 식민통치가 어려웠던 일제는 결국 1908년 5월 25일 충청북도 관찰부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하는 칙령 30호를 공포하고 6월 5일에 도적같이 강탈해 갔다.

충청도와 중부내륙의 중심도시 충주는 불과 13년 만에 일본에 의해 또 다시 광역수부의 지위를 잃게 된다. 당시 관찰부 서기관 카미타오 다카오(新谷卓南)의 충북도청이전에 대한 왜곡된 의견서로 뒤바뀐 청주와 충주의 운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네다니 유세이(金谷雅城)가 1916년에 발행한 '충주발전지'와 오쿠토이 덴가이(奧土 居天) 등이 1931년에 펴낸 '충주관찰지'엔 "폭도(의병)들이 충주를 중심으로 봉기하여 교통불편이 커서 관찰부를 청주로 이전하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청주연혁지를 지은 오오꾸마쇼지(大熊春峰)는 도청의 청주이전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민족자본 해체전략에 따른 일제의 철도부설로 남한강과 영남대로변 도시들은 쇠하고 철도에 접한 도시들이 번성하게 되었다.

이는 경부축중심의 지역차별개발로 이어져 국토불균형발전이라는 폐해를 낳았다.

도청이전 105년이 지난 지금 청주권중심의 충북개발은 바르지 못하다. 충주, 제천, 괴산, 단양, 음성, 괴산도 득을 봐야 한다. 1919년 3월 12일 수천명의 충주군민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94년이 지난 지금 충북도청과 청주시청 앞에서 '균형발전만세'를 외치고 싶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