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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3.03.01 12:13: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음성 소이면 독립만세운동 재현

1919년 3·1운동 당시 충북지역에서 한 달 동안 최소 50회에 걸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19일 괴산을 시작으로 4월19일 제천 송학까지 도내 전역에서 펼쳐졌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고등경찰관계연표'와 조선헌병대사령부의 '조선소요사건상황' 등 일제 측 자료를 보면 충북에서는 3월19일 괴산에서 가장 먼저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고등경찰관계연표'는 이날 괴산에서 장날을 이용한 군중 600명이 경찰서를 습격해 유치인을 빼내려고 문 등을 부숴 주모자 7명을 붙잡았다고 기록했다.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는 당시 가장 신속히 보고한 일제 측 자료와 우리 측 자료를 정리한 결과 당시 10개 군 전체에서 50회 이상 만세시위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제 측 자료는 9개 군(단양 제외)에서 38회에 걸쳐 2만4750명(괴산과 진천 석현 제외)이 만세시위에 나섰다고 파악했다.

일제는 회고담이나 관련 자료에 4, 5차에 걸쳐 소규모 만세시위가 있었던 단양은 포함하지 않았다.

청원군 내수읍 세교리 옛 장터의 의병장 출신 한봉수가 주도한 만세시위와 괴산군 소수면 유해륜 주도 만세시위 등은 판결문까지 있으나 일제는 통계에 잡지 않았다.

일제는 각지 독립운동 상황을 보고하는 문건에서는 보고했으나 통계표에는 빠트리기도 했다.

일제 측 자료는 충북 독립만세운동을 촉발한 괴산군에서 가장 많은 9회에 걸쳐 만세시위를 전개했고, 괴산군 청안면에서는 3월30일 하루 동안 3회나 만세시위를 했다.

음성군과 영동군 각각 6회, 진천군 5회, 보은군 4회 등으로 집계했다.

일제는 3월27일 옥천군 이원면 만세시위 등 9회에 걸쳐 발포했다.

박 교수는 최근 펴낸 단행본 '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에서 충북지역 3·1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한 달 동안 도내 전역에서 격렬하게 전개했고, 봉화 만세운동이란 독특한 시위 방법을 썼다고 성격을 규명했다.

충북 3·1운동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배격했고, 20~30대 젊은 농민층이 주도한 충북 독립운동의 원천이었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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