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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2013년을 맞이하고 한 달이 지난 지 벌써 여러 날 째이다. 그런데도 아직 새해답지 않은 까닭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마도 한해의 시작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듣는 설날이라고 어린 시절부터 각인되었기 때문이리라.

설날은 음력 1월1일로 새해 첫날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이다. 상서롭고 복된 한해가 되도록 비는 날이기도 하다. 정초, 세수, 세시, 세초 같은 한자어로도 불리지만 설날이라고 말해야만 진짜 우리의 명절 맛이 나는 다정하고 포근한 우리의 말이다.

설날은 몸을 깨끗이 한 다음 설빔으로 갈아입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며 이웃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뜻 깊은 날이다. 그래서 설 전(前)에는 어느 집이나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고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하며 설빔을 준비하느라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설날은 명절이라기보다는 황금휴일이라는 개념으로 변하였다. 설날의 넉넉함과 정성은 앞서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흥청거림과 신정에 밀려 그만 빛을 잃고 말았다.

내가 어렸을 적 설날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었다. 설날 며칠 전부터 집안은 설 준비로 북적거렸다. 떨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두 와서 맛있는 음식도 함께 만들고 설빔도 준비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 저리 놀이 감을 찾아다녔다. 북적거리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이유 없이 즐겁고 마냥 신이 났었다.

설 전날은 밤을 새우기가 일수였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천근만근 쏟아지는 잠을 참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부리나케 거울 앞으로 달려갔고 눈썹이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설날은 새벽부터 분주하였다. 우리 집은 오 남매였는데 그중 딸이 셋이었다. 아침 일찌감치 서둘러야 어머니를 먼저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빨리 세수를 하고 차례 상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를 졸라대면 어머니는 잠시 손을 놓고 세 딸의 머리를 차례차례 땋은 다음 빨간 댕기를 매어 주셨다. 그 다음 우리들은 할머니 앞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손수 지은 한복을 한명 한명 정성스레 입혀주셨다.

"참 곱다, 참 예쁘다."

할머니는 연신 감탄하며 옷매무새를 잡아주셨다.

"자, 이제 다 되었다."

할머니의 말씀이 떨어지면 세상은 온통 우리 오남매의 것이 되었다. 색동저고리에 빨간 치마는 명절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양팔을 쳐들고 빙빙 돌면서 까치저고리의 화려한 색을 마음껏 펼쳤다. 마치 공작의 날개를 얻은 기분이었고 화려하게 색칠한 팽이가 되어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차례가 끝나면 맛있는 음식이 지천이었다. 세배를 하면 덕담과 함께 세뱃돈도 받았다. 세뱃돈은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서 허리춤에 채워 준 복 주머니 속에 차곡차곡 들어갔다. 복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매었다 하던 일이 얼마나 힘이 들던지. 집안에서의 세배가 끝나면 우리들은 손을 맞잡고 이웃집으로 세배를 다녔다. 세뱃돈대신 쥐어주던 곶감의 쫄깃하고 달콤함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복조리 사려~ 복조리~"

복조리 장수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할머니는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남들보다 먼저 복을 사기 위해 이리 저리 서성이셨다. 우리들은 그런 할머니 주위를 맴 돌며 노래를 불렀다.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그립다. 정말 그립다. 나 어릴 적 설날이 지독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떡국 한 그릇이 나이 한 살 인줄만 알았던 유년의 설이 새삼 그립고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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