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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예

수필가

갑자기 추워지더니 연일 수은주가 내리막길이다. 추위를 타는 체질이라 겨울이 되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온몸이 찌뿌듯하고 이곳저곳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가벼운 운동이라도 해야지 여러 번 마음먹었지만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저녁준비를 막 시작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수안보에 친구들이 왔단다. 서둘러 약속장소에 나가보니 모두 등산복 차림이다. 텔레비전에 나온 탄금대의 상고대가 너무 아름다워 무작정 나만 믿고 왔단다. 상고대구경과 겨울등산이 목표란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아 어느 산이 좋은지도 모르겠고 이런 추위에 산에 오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막가파 친구들의 으름장과 강압을 감히 거절할 수도 없어 내일을 기약하고 돌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하얗다. 입이 딱 벌어지도록 아름다운 설경이었다. 과연 산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친구들과 약속대로 등산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길이란 길이 모두 빙판이라 운전하기가 덜컥 겁이 났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친구들은 벌써 나와 눈싸움에 여념이 없다. 신이 나 있었다. 미끄러워서 운전이나 등산이 위험하니 그냥 온천이나 하며 놀자고 제안하였다.

"눈 구경하려고 충주까지 왔지. 들어 앉아 있으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 이번에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환했거든. 눈이 와도 걱정 없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유비무환이라고 하는 거야. 자, 출발이다."

잔뜩 들떠있는 친구들과 문경새재 삼관문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다른 차들은 잘 오르는 경사 길에서 우리 차는 자꾸 미끄러졌다. 모래를 뿌리고 간신히 오를 수 있었지만 좀 의아하였다.

"사실 말이야, 눈길 운전은 처음이야. 부산은 겨울 내내 눈이 내리지 않거든. 근데 지금 말이지만 뒤로 미끄러질 때 진짜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친구의 고백에 모두들 깜짝 놀랐지만 면박 줄 여유가 없었다. 신선봉의 설경에 그만 넋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과 하얀 눈에 덮인 낙락장송, 파랗다 못해 도도하게 시린 하늘. 바람이 불면 안개처럼 스멀스멀 산등성이를 감싸 오르는 눈가루의 군무. 신비롭기 그지없다. 세상 밖 천상이 바로 여기인가 싶다.

부지런한 산악인 한 무리가 벌써 산길을 내려오고 있다. 겨울산은 일찍 저문다는데.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서둘러 주차하고 부지런히 오르다보니 어느새 삼관문 앞이다. 삼관문안으로 들어서니 하얀 눈밭 세상이 펼쳐져 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하늘이 참 푸르다. 그치?" "응, 참 좋다. 정말 좋다."

알싸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참 이상하다. 차갑고 춥다기보다는 시원하고 맑다는 생각이 든다. 덩달아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 느낌이다. 책바위 앞 정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니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겨울 산행이 준 선물이리라. 세상밖으로 나온 보답이리라.

옆자리의 친구가 슬그머니 일어서더니 빙판길로 잡아끈다. 그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오고가며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아빠 손을 잡고 타는 귀여운 소녀도 있고 플라스틱판에 앉아서 속도와 스릴을 즐기는 개구쟁이도 있다. 우리도 서로 끌어주기를 번갈아하며 미끄럼을 타기도하고 밀쳐내기도 하며 겨울놀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다른 친구들도 합류하였고 우리들의 웃음소리가 겨울 산에 가득하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이렇게 놀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저 까마득하기만 하다.

막 산봉우리를 넘어가는 태양이 마지막 온기로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보낸다. 이제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막 발걸음을 옮기니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다시 우리를 붙잡는다. 산 아래 주차장까지는 아직 세상 밖이라고 속삭이고 또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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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