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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정

충북 여성정책관

주말저녁 아는 부부와 식사를 했다. 후식을 먹는데 상대방이 계속 시계를 본다. KBS에서 방송하는 '내 딸 서영이'라는 주말 연속극을 즐겨보는데 오늘도 봐야 한단다. 빨리 일어나자고 재촉한다. 젊었을 때는 드라마라고 보지 않았던 그는 최근 고명딸을 결혼 시켜서인지 이 드라마가 와 닿는다는 것이다. 아빠로서 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이 드라마는 많은 중년남성을 브라운관 앞에 머무르게 한다. 본인도 서영이 아버지처럼 될 것 같아 불안한 것일까?

주말 저녁에 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 딸 서영이>는 재벌아들과 결혼하는데 '못난 아빠'가 걸림돌이 될까 결국 아버지가 죽었다고 거짓말하는 딸과 그런 딸을 이해하면서 가슴아파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통속적인 신데렐라 드라마라고 하기엔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작동한다. 원래 빈자와 부자들은 서로 만날 수 없지만 결혼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물론 드라마에서 잠깐의 설정이지만. 그래서인지 주인공 서영은 '못난 아버지'를 말하기보다 '아버지가 없는' 고아가 된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부녀관계를 중심에 두고 작가는 부부관계, 고부관계, 모자녀관계 등 우리 주변의 수많은 관계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하룻밤 욕망의 결과로 생긴 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아버지(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 남성들의 어려움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남성들이 몸가짐을 더 잘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평생 돈 벌기위해 눈치 보다가 퇴직 후 몰래 자신이 하고 싶은 (홈쇼핑) 모델이 된 아버지, 회사부도 이후 온갖 일을 다해보지만 허세로 가족에게 빚만 남기는 서영이 아버지까지, 다양한 아버지가 있다. 문제는 드라마보다 더 힘든 현실에서 아버지들이 가족들과 어떻게 관계할지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심하고 외로워한다는 것이다.

평생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아버지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자신과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일단 성과를 내야 하는 아버지들은 부인이나 자식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른다. 물론 일하는 아버지들은 너무 바쁘다. 일터에서 눈치 봐야 할 사람도 너무 많다. 술 먹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그런데 친구들과 경제이야기는 해도 자식이나 부인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토로할 사람들이 없다. 외롭다. 때로는 허무하다.

남성도 여성처럼 갱년기가 있다. 말 그대로 '힘 빠짐'이다. 20대는 패기로 30~40대 때는 바빠서 정신없다가 50대가 되면서 갑자기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는 갱년기'를 남성들도 만난다. 일만 하면 될 것 같았던 그 시절처럼 이제는 일할 기회나 건강도 따라주지 않는다. 내 실수가 아니더라도 과거처럼 잘 나가는 것 같지도 않다. 자식들도 내 편이 아니고 믿었던 부인도 멀리 있다. 때로는 서영이 아버지처럼 계속 허세부리다가 아이들에게 빚만 남길 수 있다. 세상은 이런 아버지도 아버지라고 말하지만 서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거짓말을 한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결국 서영은 아버지를 받아들일 것이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아버지가 가족들과 잘 지내는 방법, 아버지가 갱년기를 이기는 방법은, 아버지로서 권위가 아니라 한 명의 가족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가족들과 섞이는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잠시의 역할이지 권리가 아니다. 권위적 아버지가 아니라 '자상한 아버지'가 되는 것! 특히 아버지로서의 의무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마음을 열고 가족들과 세상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더 멋지다. 잠시라도 남성들이 '멋진 아버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성공이다. 오늘 당장 자녀들에게 말을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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