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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교

진천소방서 소방위

늘 불을 가까이하는 소방관이지만 아직도 모를게 불이다. 우리 인류가 정착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바탕에도 다름 아닌 불을 도구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불이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만은 아님을 화재현장의 잔해들이 이룬 검댕 숲을 대하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화재현장에는 불길이 수화처럼 그려낸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몸짓을 해독하여 왜 화재가 발생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내가 소방서에 맡은 화재조사 업무이다. 필자 또한 수년간 화재조사를 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대하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 참 많은 점들이 닮아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 특히 우리 삶에 있어서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화재 또한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방에서 흔히 말하는 화재의 3요소와 인생을 서로 비교해 보면, 먼저 화재의 3요소는 가연물, 공기(산소), 점화원(열)으로, 이들 중 1개라도 없으면 화재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꿈으로 인하여 태어나서, 꿈을 위하여 노력하고, 꿈을 이루는 것으로 귀결되는 우리의 인생, 그 중에서도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수많은 화재현장에 남겨진 패턴과도 무관하지 않다.

화재 패턴과 관련된 용어 중에는 '플래쉬오버('flashover)와 '백드래프트('Backdraft) 있다. 먼저 플래쉬오버는 화재가 커져가는 한 단계로, 화재에 의해 발생된 열이 건축물 내에 축적되어 그 주변의 모든 표면과 물체들이 연소되기 쉬운 상태에 이르렀을 때 순간적으로 강한 화염을 분출하면서 내부 전체가 한꺼번에 타오르기 시작하는 단계로, 이는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데 우리가 흔히 첫 눈에 반하는 사랑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오래전부터 꿈꾸었던 사랑이 무의식 중에 잠재해 있다가 한 줌의 재가 될 정도로 뜨겁게 만나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플래쉬오버가 사랑이라면 백드래프트는 이별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백드래프트란 열기폭발이나 연기폭발처럼 순간적으로 대량의 공기들이 화재가 발생한 실내로 유입되어 고온의 연기 및 가스가 폭발하거나 급속하게 연소하는 현상으로, 우리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진압을 위하여 문을 열다가 일순간 밀쳐 나오는 압력에 부상을 당하곤 하는데, 이는 남녀가 이별할 때 나타나는 한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밀쳐내면서 분노와 함께 외로움을 안으로만 삭이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밖으로 분출해 모든게 산산이 무너져 내리며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이별과 흡사하다. 이렇듯 화재와 삶은 확연히 다른 듯 보이지만 공통점이 많은 함수 관계가 성립된다고 하겠다.

알맞은 조건의 불길은 우리에게 따뜻함을 준다. 늦은 가을 모닥불의 추억을 떠올려 보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쬐는 불길은 스산한 가을바람으로부터 우리의 체온은 물론 마음까지 포근하게 해주었다. 사람의 사랑에 있어서도 이와 다르지가 않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구애는 관심이 아니라 구속일 수 있다. 특히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는 더욱 그러하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서로를 아껴주고 위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논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자연의 도구 중 하나인 불에서부터 사랑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배려하는 지혜를 갖으라는 뜻일 것이다. 앞으로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불길이 나와 마주할지 알 수 없듯이, 내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의 테마에 희로애락을 접할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일수록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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