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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씨엔씨 재활병원 환자들의 새해 소망

뇌졸중·교통사고로 심각한 후유증
"두 발로 걷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올해는 꼭 건강해지길 '두 손 모아 기도'

  • 웹출고시간2013.01.01 07:02:1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청주 씨엔씨 재활병원 식구들이 투병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며 활짝 웃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근태(29), 임예묵(50), 반영선(40) 간호사, 박경자(70)씨. 뒷줄 왼쪽부터 김상모(34)·정한나(27)·양수은(30) 물리치료사, 정해균(35) 원무과 대리.

ⓒ 김태훈기자
병원의 아침은 빠르다. 대개 오전 5시면 시작한다. 환자들이 새벽잠이 없는 이유는 다소 황당하다. '화장실'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화장실에 한 번 들어가면 보통 20~30분이다. 목욕이라도 한 번 하려면 1시간 전엔 자리를 찜해야 한다.

지난 가을에 입원한 박성구(62)씨가 1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또 전쟁을 치르겠군.' 아니나 다를까, 춘자 아줌마가 벌써 변기에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아줌마, 빨리 나와. 나 죽을 거 같어!" 박씨가 눈물(?)로 호소한다. 10여분 뒤 볼일을 마치고 나오던 춘자 아줌마가 핀잔을 준다. "그러기에 누가 늦잠 자래요? 하여튼 똥 누는 것도 일이라니깐."

우리는 모른다. 사소한 일상생활이 이들에겐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우리는 또 모른다.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120명 환자들의 투병기

뇌졸중 환자 임예묵(50)씨가 임현희(24) 물리치료사와 함께 '진볼'을 이용한 중심근육 강화운동을 하고 있다.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씨엔씨 재활병원. 7층짜리 건물에 무려 120명의 환자가 생활한다. 80여명은 뇌졸중(중풍), 나머지는 교통사고와 고관절 환자다. 이 병원에 있는 뇌졸중 환자들은 모두 편마비 증세를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 한 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증상이 위중한 환자는 말도 잘 하지 못한다. 실어증까지 온 거다.

혼자선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든 이들에겐 간병인이 붙는다. 개인 간병인은 하루 7만원, 공동 간병인은 한 달 58만원을 받는다.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뇌졸중 환자에겐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2년 째 뇌졸중 남편을 간호하는 남애자(61)씨는 "1년 동안 간병인을 쓰다 보니 2천만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며 "더 이상 간병인을 쓸 수 없어 다른 일을 제쳐두고 직접 간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밥이 왔어요~." 오전 7시20분, 영양사 아줌마의 우렁찬 목소리가 병실 분위기를 바꾼다. 그런데 이마저도 잠시, 환자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 또 풀이야? 고기 좀 줘. 고기!"

언제든지 재발 위험성이 있는 뇌졸중 환자들에겐 절대 맵고, 짜고, 기름진 음식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추기 위한 채식 위주다.

원무과 정해균(35) 대리는 "얼마 전 한 환자가 '밥이 맛없다'고 원무과까지 찾아와 크게 화를 냈다"며 "우리라고 왜 맛있는 음식을 주고 싶지 않겠느냐. 다 환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비틀고 꺾고 '공포의 재활치료'

김문근(50·맨 앞쪽)씨를 비롯한 뇌졸중 환자들이 이른바 '코끼리' 치료라 불리는 상하지 운동을 하고 있다.

밥 맛 없는(?)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오전 9시부터 재활치료를 받는다.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몇몇 환자들이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가족들과 입씨름을 한다. 이 병원의 터줏대감 김문근(50)씨가 병실을 돌며 환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남씨 아저씨! 뭐 하는 겨. 빨리 운동 안 햐?"

김씨는 잔소리를 할 만한 자격을 갖췄다. 뇌경색 투병 3년째인 김씨는 이제 두 발로 병상을 누빌 정도로 건강해졌다. 휠체어, 지팡이와도 차례차례 이별했다.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첨엔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젤 싫었어. 아주 꺾고, 비틀고 나를 반 죽여 놨거든. 그래도 어쩌겠어? 다시 걷고 싶은데 참아야지. 아기들 아장아장 걷는 게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니깐."

김씨는 하루 종일 이어폰을 꼽고 운동을 한다. 이왕 하는 재활치료, 즐겁게 하자는 긍정적 마음가짐에서다. 가장 좋아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흘러나오자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속도가 빨라진다.

박경자(70)씨가 정한나(27) 물리치료사와 함께 평행바를 활용한 걷기 연습을 하고 있다.

◇70년 만에 다시 시작한 '걸음마'

"왼발, 왼발! 너무 많이 나갔어요. 다시 중심 잡고! 고개 들고!" 여기저기에서 물리치료사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환자들의 '억울한' 마음은 매한가지. "난들 이렇게 하고 싶은가. 어디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야 말이지."

뇌졸중은 운동 기능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파괴시켜 정상적인 움직임을 둔화시킨다고 한다. 환자들의 한쪽 손이 쪼그라들고, 한쪽 발이 질질 끌리는 이유다.

평행바 위에서 걸음마 연습을 하는 아주머니가 눈에 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머리까지 말아 올린 박경자(여·70)씨. 그녀도 처음엔 자신의 병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70년 만에 다시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탄스러웠다.

하지만 이젠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아침마다 곱게 화장을 하면서다. 박씨는 "아무리 환자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게 여자의 마음"이라며 "아침마다 화장과 머리 손질을 하면서 기분을 전환한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라고 웃었다.

◇지난해 불행의 연속… "새해엔 훌훌 털고파"

603호에 입원해 있는 이세훈(80) 할아버지는 임진년에 커다란 불행을 두 차례나 겪었다. 평생 병원 근처도 가본 적 없을 정도로 건강한 몸이었지만, 정초부터 '오른쪽 다리 파킨스 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병세가 심하지 않아 다리만 살짝 떠는 증상이었다.

그런데 8월6일,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또 찾아왔다. 치료 차 갔던 병원 주차장에서 84세 노인이 몰던 차에 치인 거다. 이번엔 반대쪽 다리의 고관절이 부러졌다. "다리도 다리지만 마음이 아팠어. 늙은 마누라를 홀로 둔 채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됐으니."

청원군 오송읍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할머니도 몸이 성치 않다고 한다. 허리, 무릎, 어깨 수술을 받은 이른바 '종합병원'이다. 서울에 살다 3년 전 공기 좋은 오송으로 내려와 즐겁게 여생을 보내려 했건만, 어둠처럼 드리운 병마(病魔)가 노부부의 행복을 앗아갔다.

"안부 전화는 자주 하세요?", "거의 안 해요. 괜한 걱정만 끼칠까봐."

"그래도 혼자 계셔서 외로울 텐데 전화 좀 하시지요", "그런 게 영 어색해서 말이지, 허허."

새해 소원을 물었다. "다 늙어서 무슨 소원이에요. 굳이 있다면 빨리 퇴원하는 거지. 혼자 있는 마누라가 불쌍하잖아."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가슴 속 깊이 담아둔 소망을 꺼내는 듯했다. "죽기 전에 고향에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황해도 연백군이 내 고향인데. 1·4 후퇴 때 부모를 두고 잠깐 내려왔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네. 돌아가셨을 부모님 묘에 술 한 잔이라도 따라 드리고 싶은데…. 기자 양반, 새해엔 다 잘 되겠지?"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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