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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12.09 19:06: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최근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한문이름 古恒)이 수집해 소장하고 있던 소장품 중에서 한국고서가 발견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해외 한국고서 디지털화 사업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한국고서를 조사하던 중 꾸랑의 소장본 254책을 확인한 것이다. 꾸랑은 한국의 고서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한국서지'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고서 3,821종에 대한 목록과 함께 소장처(자)와 자세한 해제를 덧붙였다. 즉, 꾸랑은 한국을 서양에 소개한 프랑스 최초의 한국학 학자로 높게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꾸랑은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파리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동양어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여 고등교육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중국 북경주재 프랑스공사관 통역관 실습생으로 파견되었다가 수석 통역관이 되었다. 1890년에는 조선주재 프랑스공사관 통역서기관으로 전속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서울에는 대리공사였던 꼴랭 드 쁠랑시가 유일한 외교관 동료이자, 상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꾸랑은 쁠랑시의 조언에 따라 한국의 문화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한국고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쁠랑시는 약 21개월 동안 한국에 체류했던 꾸랑에게 한국고서에 대한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에게 책을 저술하도록 권유하였다. 한편 꾸랑은 한국을 떠난 후에도 뮈텔주교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제공 받기도 하였다.

꾸랑의 저서인 '한국서지'는 1894부터 1896까지 3권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1901년에는 보유판이 출판되었는데, 이는 쁠랑시가 조선에 두 번째 부임했던 1896년부터 파리 만국박람회가 개최된 1900년 사이에 한국에서 새로이 수집하여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전시했던 자료들이다.

꾸랑의 '한국서지'에 수록된 도서 가운데 '직지'는 1901년에 간행한 보유판에 3738번으로 소개하였는데, 소장자가 쁠랑시로 되어 있다. 꾸랑은 직지에 대하여 "이 책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적고 있다. 1377년 청주목외 흥덕사에서 주조된 활자로 인쇄됨. 이 내용이 정확하다면, 주자 즉, 활자는 활자의 발명을 공적으로 삼는 조선시대 태종의 명(계미자)보다 26년가량 앞서 사용된 것이다. 그 외에도 선광 7년이라고 쓴 연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선광이라는 통치연대의 명칭은 1371년 원조의 왕위계승을 요구하는 소종에 의해 채택된 것이다." 라고 기술하였다.

꾸랑의 '한국서지'는 서론 부분이 1912년에 아사미에 의해 '조선예문지'란 제목으로 일어로 번역되었고, 1936년에 매시 로이즈가 영문으로 번역하여 '왕립아세아협회 조선지부 회보'에 게재하였다. 그리고 이 영역본을 1940년에는 오구라가 '조선서지서론'이란 제목으로 일본어로 다시 번역하여 잡지 '조선'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서론 부분이 1946년에 김수경에 의해 '조선문화사서설'이란 제목으로 한글로 번역, 출판하였고, 1974년에 박상규에 의해 '한국의 서지와 문화'로 한글본이 출판되었는데, 여기에는 서론과 함께 고서 목록을 부록으로 소개하였다. 최근에 숙명여대 이희재 교수에 의해 꾸랑이 지은 '한국서지'가 완역되어 서지학계에서는 바이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쁠랑시는 외교관으로 한국에 근무하면서 수집한 직지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표지에 "1377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으로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책"이라 기록하여 박람회에 전시하였으며, 꾸랑은 '한국서지'라는 책을 편찬하여 직지를 비롯한 한국문화를 서양에 소개하였다. 이들은 한국학의 선구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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