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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가을이 깊어가던 날. 이름 모를 들꽃들을 마구 흔들어주고 싶은 바람의 마음이 되어 '연풍성지'를 향하여 출발했다. 오늘같이 가을이 깊어가는 날은 마음이 절로 풀어진다. '연풍성지'는 수채화 물감을 풀어 놓은 듯 가을빛으로 충만했다. 무엇이 그리 성급하였는가. 어느새 낙엽이 되어 갈바람에 뒹구는 갈잎하나 주워들고 정성스럽게 내려다보았다. 한 장의 낙엽이 주는 감회는 한 송이 꽃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소소한 것들에게까지 눈길을 주고 마음을 퍼주고 싶어지는 날이다.

그 누구를 남몰래 연모하기에 온통 붉은 핏빛으로 변해 버렸는고. 맘껏 팽창한 현악기처럼 툭 건들기만 해도 발산해 버릴 것 같은 마음을 감추려는 듯, 파르르 떠는 어여쁜 단풍들을 어찌 할꼬.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어린아이처럼 소리 지르다 흠칫 했다. 야외에서 단체미사 드리는 사람들의 무리를 발견하곤 풀어졌던 생각들을 삼갔다. 이곳이 관광지가 아닌 거룩한 성지라는 사실을 단풍에게 넋을 빼앗겨 잠시 잊고 있었다. 나는 경전을 향하여 나가듯 조심조심 걸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죄악 때문이라…(사:53)'성지여서일까. 곱디고운 빨간 단풍나무아래서자 투박한 나무십자가로 흘러내리는 핏빛이 연상된다. 온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그리스도를 잠시 생각했다. 외아들을 인류구원의 희생양으로 내주셨던 하나님마음을 헤아려보았다. 삽상한 바람이 불어온다. 피 빛으로 물들어 절절히 흐르다가 떨어지는 단풍들이 서러워 차마 밟지 못하고 피하여 걸었다. 단풍은 신심을 순하게 한다.

한 나라로 종교가 흘러 들어가 자리 잡기까지는 박해와 고난 없이 어찌 가능했겠는가. 병인박해 때에 순교한 황석두 루가 성인의 묘소 앞에 서니 숙연한 울림이 전해져온다.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는 부친의 말에 작두날에 목을 디밀었다는 성인, 무엇이 그로 하여금 생명까지 내놓도록 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류가 구원받는 길을 열어 놓으셨듯이, 한 성인의 목숨 값으로 세워진 이 성지에서 수많은 후손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으니 참 감격이로구나.

또 한 차례 불어오는 바람결에 빨간 단풍잎들이 현란하게 찰랑거린다. 제 몸을 불태우며 마지막 열정을 꿈꾸는 듯 찬란하게 흔들리는 단풍나무아래서서 다짐한다. 선홍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성인들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 지라도, 피처럼 뜨거운 열정을 되찾아야겠다. 누군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영혼들에게 다가가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리. 그것만이 고귀한 피를 흘리며 희생하신 분들에게 진 사랑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길이 되려니.

깊어가는 가을, 핏빛 단풍에 취하고 풍경에 취했던 하루가 보석처럼 귀하다. 자연 속에서 사색에 잠겨 걸으면서 얻은 진주가 알알이 가슴을 채우니 아직 남은 가을은 넉넉하리라. 가을은 단풍을 내놓고 단풍은 깨달음을 주니 단풍은 핏빛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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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