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2.11.22 16:59:5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한흥구

옥천부군수

작곡가 정순철은 1901년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났다.

동학 2세 교조이신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인 그는 손병희의 도움으로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방정환과 한집에 살면서 천도교 소년회 활동을 했다.

1922년 일본 동경음악학교에 입학해 공부했으며 1923년 방정환, 윤극영 등과 함께 '색동회'를 창립하면서 어린이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짝짜꿍', '졸업식 노래' 등을 작곡하였으며, 6. 25전쟁 중에 납북된 뒤 생사를 알 수 없다.' 라고 지난 11월 9일 옥천 문화예술회관 앞에 세워진 정순철 노래비에 새겨져 있다.

옥천이 가장 자랑하는 사람은 역시 정지용 시인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로 시작되는 '향수'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시이자 노래다.

그러나 옥천 청산면 출신 작곡가 정순철을 아는가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는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바로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이 정순철이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우리말로 만든 졸업 노래가 없던 때 탄생해 민족의 마음마저 달래준 노래다.

이 곡의 노랫말을 '반달'의 작사가 윤석중 선생이 붙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작곡자가 옥천 출신의 정순철 선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순철 선생을 재조명하는 행사가 지난 11월 9일 옥천에서 열렸다.

2008년 정순철 기념사업회를 만들면서 시작된 '제5회 짝짜꿍 동요제'에 맞춰 11월 9일 정순철 노래비가 세워졌다.

정순철은 소파 방정환 선생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이지만 한국전쟁 중 납북됐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정지용 시인이 전쟁 중 납북된 뒤 한동안 문단에서 잊혀졌던 것과 비슷한 경우다. 정지용의 고향도 충북 옥천이다.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난 정순철은 동학 교주 최시형 선생의 외손자다. 초등학생 무렵 상경한 그는 천도교도 친척 집에 머물며 손병희 선생의 배려로 보성중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손병희 선생의 사위인 방정환과 일본 유학을 떠나 음악을 공부한다. 이후 방정환, 손진태, 진장섭, 고한승 등과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쳤다.

1923년엔 잡지 '어린이'를 창간, 창작 동요를 보급했다.또한, 정순철은 1929년 첫 번째 동요집 '갈잎피리'를 출간했고, 그의 아들이 소장하고 있는 갈잎피리 복사본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까치야', '길 잃은 까마귀', '여름비', '봄', '우리 애기 행진곡' 등 동요 10곡이 실려 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으로 시작하는 우리 애기 행진곡은 윤석중의 시 '울던 언니 웃는다'에 곡을 붙인 것으로 후에 '짝짜꿍'으로 곡명이 바뀌었다.

일본 유학 후 중앙보육학교(중앙대 전신), 무학여고·성신여고 등에서 음악교사로 일하던 그는 1950년 9월 후퇴하던 북한군에 의해서 납북됐다. 그 후 그의 행적, 생존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순철 노래비에는 선생의 대표작인 '짝짜꿍' 친필 악보와 업적을 담았고, 또한 옥천문화예술회관 입구 쪽 벽면에 선생이 피아노를 치며 작곡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달았다.

노래비 뒷면에는 이 비는 옥천군과 정순철 기념사업회,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세웠으며, 악보 노랫말은 정순철 선생의 친필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정순철 선생의 생애를 도종환 시인이 정리하고, 이기수 교수가 비를 조각하였으며, 제호 붓글씨는 김성장이 썼다라고 적었다.

이번 정순철 노래비 건립과 매년 열리는 '짝짜꿍 동요제'를 통해 우리 옥천군이 동요의 고장으로 더욱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기업 돋보기 5.장부식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

[충북일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국내 시장에 '콜라겐'이라는 이름 조차 생소하던 시절 장부식(60) 씨엔에이바이오텍㈜ 대표는 콜라겐에 푹 빠져버렸다. 장 대표가 처음 콜라겐을 접하게 된 건 첫 직장이었던 경기화학의 신사업 파견을 통해서였다. 국내에 생소한 사업분야였던 만큼 일본의 선진기업에 방문하게 된 장 대표는 콜라겐 제조과정을 보고 '푹 빠져버렸다'고 이야기한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해당 분야의 첨단 기술이자 생명공학이 접목된 콜라겐 기술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였다. 회사에 기술 혁신을 위한 보고서를 일주일에 5건 이상 작성할 정도로 열정을 불태웠던 장 대표는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으로 선진 견학을 갔다. 정작 기술 유출을 우려해 공장 견학만 하루에 한 번 시켜주고 일본어로만 이야기하니 잘 알아듣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견학 때 눈으로 감각적인 치수로 재고 기억해 화장실에 앉아서 그 기억을 다시 복기했다"며 "나갈 때 짐 검사로 뺏길까봐 원문을 모두 쪼개서 가져왔다"고 회상했다. 어렵게 가져온 만큼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견학 다녀온 지 2~3개월만에 기존 한 달 생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