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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호

시인

지난주에 반기문 전국백일장이 열렸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생가가 있는 유엔평화랜드에 전국에서 600여 문사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백일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건이 하나가 터졌다. 반기문UN사무총장 연임 축하비의 비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반숙자 수필가가 쓴 시문에 오타가 나왔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고 소문은 일파만파로 순식간에 행사장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웅성거리리는 사람들의 틈바귀를 비집고 들어가 확인해 보니 정말 UN회원국이 "일백이흔두나라"라고 표기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흔이란 말은 없다. 내 놓으라하는 분이 지었거니와 여러 사람의 교열을 거쳐 서각한 것인데 이런 실수가 있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엔회원국이 122개국이니 172개국이니 쑤군거렸다. 사실 필자도 시비가 세워지기까지 처음부터 참여했었음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시비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비아냥거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시비(詩碑)가 시비(是非)거리가 된 것이다. 비문을 쓴 당사자와 비를 세운 종친들이 달려왔다. 세상에! "이십이라면 몰라도 이흔이 뭐냐?" 그때 종친 한분이 시비를 닦았는데 작은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갔다. 순간 사람들은 놀랐다. 분명 "이흔"의 이字가 아字로 변하는 게 아닌가? 거미가 점 하나에 눌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UN회원국이 "일백이흔두나라"란 글자가 거미집을 제거하면서 "일백아흔두나라"라고 명확히 드러나면서 詩碑에 대한 是非는 끝났다.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인해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유엔회원국이 192개국이란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당일 심사를 끝내고 사상까지 마쳐야 하는 대학, 일반부 시상식에서 또 다른 시비가 있었으니 등위의 표기문제였다. 1등한 사람의 등위가 장원이 아닌 UN평화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백일장에서는 1등, 2등, 3들이라던가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혹은 금상, 은상, 동상 등으로 시상하지 않고 장원, 차상, 차하, 참방으로 등위를 정하는 게 통례로 되어있다. 이는 조선시대에 관리를 뽑기 위해 시행되었던 과거 제도에서 유래된다.

조선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하여, 고려말의 소수의 혁명파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건국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이상대로 모든 관리를 과거를 거쳐 선발하고자 하였다. 관리로 등용되어야만 출세할 수 있었던 당시에는 관리의 임용제도로서의 과거가 크게 주목되었다. 이 후 조광조의 주장에 의한 천거제인 현량과가 도입되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조선 왕조 전 기간에 걸쳐 정기적으로 과거가 실시되었다. 과거도 고려의 제도를 따라, 문과·무과·잡과로 크게 구분하였지만, 문(文)을 숭상하는 경향은 여전하여 보통 과거라 하면 문과를 지적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컸다. 따라서 천인(賤人)은 물론, 같은 양반이라도 서얼 출신은 응시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신분상으로는 일반 서민인 양인(良人)과 양반만이 응시할 수 있었으나, 양인이 급제한 사례는 적어 대개 순수한 양반들만이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과거에 합격하면 합격자를 위한 방방(放榜) 의식이 근정전 뜰에서 베풀어지며 왕이 홍패와 어사화(御賜花)를 제일급제자 장원(壯元)을 위시하여 순위대로 하사한다. 그리고 급제자의 부모를 위한 잔치를 관에서 베풀고, 급자제들은 3일 동안 거리를 누비며 축제를 벌인다. 그때 붙여진 등급의 순위 명칭이 지금도 백일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은 지켜져야 마땅하나 더 좋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과감히 탈피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전국백일장에서는 상명을 평화상, 자유상, 평등상, 사랑상으로 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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