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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섭

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나는 매주 한 번씩 상당산성을 오른다. 조금이라도 늦어 해가 중천에 뜨면 도시의 늑대와 여우들이 어슬렁거리니 그 꼴 보기 싫어서라도 이른 아침에 산성을 오른다. 늘 만나는 사람을 피해,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대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하나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을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산성의 대자연 모두가 나의 벗이고 연인이다. 그들과 수다떨다보면 어느새 나는 오르가즘을 느끼며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는다. 하산하는 길에는 항상 내 마음이 초록물결로 가득하니 산성이 내게 주는 축복이자 나만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산이라면 사계절 뚜렷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상당산성만의 신묘함이 있다. 얼었던 대지를 뚫고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리는가 싶더니 이내 목련꽃과 개나리꽃이 무진장 핀다. 꽃들의 화려한 군무가 끝나면 산 정상은 온통 푸른빛으로 가득하다. 싱그러운 향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오니 내가 곧 산이다. 산성의 여름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성곽 밑을 바라보는 재미도 뭉클하다. 울울창창한 숲 속에는 뭔가 신비스러운 신화와 전설이 있을 것 같다.

여름도 잠깐, 산성은 다시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데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겨울이 온다. 휘몰아치는 눈보라에도 끄떡 하지 않고 알몸으로 순백의 미를 발산한다. 밝아오는 여명에서부터 꼿꼿하게 솟아있는 한낮의 태양, 그리고 벌겋게 불타오르는 석양에 이르기까지 산성은 언제나 기운차고 아름답다. 그동안 내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옹졸하고 경거망동 했던지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하나 더. 산성에 오르면 아주 특별한 공간과 가슴 따뜻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얼음골아저씨다. 그는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얼음덩어리를 갖다 놓는다. 등산객들은 어김없이 이곳에서 청량한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그는 산성에서 칡즙과 음료수를 좌판에 올려놓고 판매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몇 해 전부터는 나무의자까지 손수 만든 뒤 등산객의 새로운 쉼터로 쓰게 했다.

이쯤되면 그는 장사꾼이 아닌 예술가이자 생명운동가이며 아주 특별한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힘겨운 삶의 연속일 것인데 이웃을 배려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다. 문득 내 몸이 닳아 이 세상의 한 모서리가 눈부시게 깨끗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생각난다.

그와 나는 절친이다. 매주 한 번씩 산에서 만나는 유일한 벗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그의 맑은 미소와 따뜻한 배려를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토록 어질고 살갑던 그가 운명을 달리했다. 오토바이로 얼음을 실어 나르던 중 빗길에 미끄러졌고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숨을 거둔 것이다. 이를 어쩌나. 나, 다시, 산성을 오를 수 있을까. 갑자기 슬픔이 밀려오고 눈물이 쏟아진다.

정치와 권력과 돈과 명예에 눈 먼 세속의 사람들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았다. 되레 갈등과 상처를 줄 뿐이다. 그렇지만 그는 산성을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칡즙과 아이스크림 몇 개 사 주는 세상 사람들이 고마워서, 이 때문에 생계를 이어가고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어서, 산성과 대자연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비바람 불고 눈보라 밀려와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이란 어려운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움을 꿈꾸고 아름다움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실상은 가식과 욕망과 이기주의에 젖어 본질이 퇴색되는 경우가 많다. 얼음골 아저씨의 실천이야말로 꽃보다 아름답다. 매주 산성에 오르면서 그를 볼 때마다 포슬포슬한 흙냄새를 느꼈다. 가슴이 넓어지고 따뜻한 마음이 밀려왔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아름다움이 쏟아졌다. 산성에 그의 예쁜 심성을 작은 비석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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