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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81세의 원로 학자께서 서울에 오면 한 번 만나고 싶으시다는 연락을 주곤 하셨다. 학문 분야는 다르셨지만, 지도교수님과의 인연을 통해 뵙고 있었던 분이셨다. 마르신 체구에 늘 웃음을 띠시고 자애롭게 바라보시면서 국내에서도 학술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심지어는 노구를 이끄시고 젊은 학자들과 함께 여러 차례 외국에서의 국제학술회의도 공동으로 주최하시면서 다녀오신 적도 있으셨다. 연로하신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해 주셔서 늘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연배 차이도 있으신 관계로 그 분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분이셨다. 아직도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시기에 간혹 안부전화라도 드리고 싶을 때는 댁으로 직접 전화를 드려야만 했다.

2주 전이었던가, 급히 찾으신다는 다른 분의 연락을 받고는 저녁 시간에 댁으로 전화를 드렸다. 서울에 오는 대로 잠깐이라도 만나자는 말씀에, 평소처럼 을지로 하동관에서 점심을 모시겠습니다하고 약속을 잡았다. 생각해보니 최근 1년 사이에 뵙지도 못했기에 무척이나 송구스럽기도 했지만, 오후에는 다른 일정도 있었고 또 평소 검소하신 분이셔서 그 곳에서 뵙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 그 누추한 곳에서 원로 학자께선 당신이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간직해 오신, 그리고 내겐 너무나도 과분한 선물을 준비해 오셨다. "배움에 있어서 싫증을 느끼지 말아야 하고, 남을 가르침에 있어서 권태를 느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지닌 공자님의 말씀 "學而不厭(학이불염) 誨人不倦(회인불권)" 여덟 글자 선물이었다.

조선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이 한 명 더 있다 하여 스승으로부터 직접 又峰(우봉)이라는 호를 받으신 한상갑(韓相甲) 선생께서 18년 전인 1994년 2월에 직접 쓰신 동일한 여덟 글자 5편을 선물로 주셨다고 설명하셨다. 훗날 학문에 정진하면서 학자의 길을 가는 후학에게 선물로 증정하라는 말씀과 함께.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봉 선생은 작고 하셨지만, 당신께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TV 화면을 통해 크게 나타난 "學而不厭 誨人不倦" 여덟 글자를 보시고는 또 한 번 크게 깨우치셨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더욱이 한지에는 장차 이 선물을 기증할 원로 선생님의 한자 이름과 글을 쓰신 우봉 선생의 호와 이름 그리고 두 개의 낙관까지 찍혀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귀한 선물을 받아들고는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이 귀한 선물을 주시려고 원로 학자께서 이 젊은 사람을 그리도 만나자고 하셨구나 생각이 드니 더 황송할 뿐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이, 다음 일정이 바쁠 테니 서둘러 일어나자고 하시면서 큰 길까지 나와 택시를 잡아 주셨다.

엎드려 선물을 받들면서 이 글의 내력에 대해 말씀도 더 듣고 원로 선생님에 대해 그동안 감히 여쭙지 못했던 이러저러한 말씀들을 나누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원로 학자께서는 내 부친과 청주고등학교 25회 동기 동창이셨던 것이다. 6·25 전쟁 통에 동기들과 헤어져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울대 법대를 나오시고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신 후, 평생을 학교에서 학문에 정진하시느라 학계에 있는 몇몇 동창들만 만나 교류해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다.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나는 지금 아버지의 친구 분이신 원로 학자께서 18년을 간직하시다 전해주신 귀한 선물을 받들면서, 연구실에서 학문과 학자의 길을 주제로 깊은 상념에 빠졌다. 무척이나 반갑고 소중한 인연, 더욱 학문에 정진하고 다른 이를 가르치는 데 평생 소홀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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