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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소실되는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전쟁과 불이다.

후기구석기의 보고(寶庫)인 단양 수양개 유적 초기철기 시대 움집이 발굴결과 모습을 드러냈는데 기둥이며 토기 등 수많은 유물은 불에 탄 채로 출토됐다. 부족 간의 전쟁이나 큰 불로 인해 주거지가 폐허로 변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수양개 유적뿐만 아니라 청동기, 철기시대 움집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는 목조 문화재가 많다. 탑의 경우 석탑이전에 목탑이 건립됐다. 높이 80m에 이르는 황룡사지 9층 목탑이나 익산 미륵사지 목탑이 없어진 것은 전란 때문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문화재가 수난을 겪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목조 문화재가 화재에 취약하다. 화순의 쌍봉사 목탑도 화재로 소실됐으며 보은 속리산 법주사 또한 정유재란 때 모두 불에 탄것을 벽암대사가 중창한 것이다. 청주 중심가에는 용두사(龍頭寺)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몽고 전란 때 소실됐고 철당간만 남아 제터를 지키고 있다. 충주 미륵리 사지에 있었던 절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향을 한 석굴사원이었으나 이 또한 전화를 입어 석굴이 파괴됐다. 남아 있는 석축에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목조문화재가 많다. 국보 407개 중 23개가 목조 건축물이다. 그외에보물, 지방문화재를 합치면 목조 문화재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목조 문화재는 관리하기도 힘들다. 기와가 낡으면 다시 기와를 얹어야 하고 기둥, 서까래, 도리 할 것 없이 잔손질을 해야 한다.

그 많은 목조 문화재를 원형대로 일일이 보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문화재는 선조의 얼과 슬기를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이기에 번거롭다고 생각할 것만 아니라 거기에 애착을 가지고 관리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문화재청과 문화재 관리를 위임받은 각 지자체서 책임의식을 높이는 것은 물론, 전 국민이 문화지킴이가 돼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보 제 1호인 숭례문(崇禮門)이 방화로 보이는 화재에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서울 하면 으레 떠올리는것이 일반적으로 남대문으로 더 잘 알려진 숭례문인데 그 서울의 얼굴이, 한국의 얼굴이 숯 빛으로 변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숱한 전화에도 끄덕 없이 수도 서울을 지켜온 서울의 수문장이 현대사회에서 객사하고 말았으니 이러고도 우리나라를 문화국가라 부를 수 있는가 말이다.

소, 돼지를 기르는 축사에도 많이 설치돼 있는 그 흔한 스프링 클러가 국보 제 1호에 없었다 하니 문화재 취급이 가축대접만도 못한 것 같아 우울해진다.

조선은 개국하면서 40여리 도성을 쌓고 큰 대문 4개와 작은 대문 4개 등 여덟 개의 문을 내었다. 그 4대문이 숭례문(남대문), 흥인문(興仁門:동대문), 돈화문(敦化門:서대문), 숙청문(肅淸門:북문)이다.

숭례문은 일반인이 통행할 수 없었고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다. 세로로 된‘崇禮門’편액은 여러 설이 있으나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양녕대군의 휘호일 듯싶다.

잘 다듬은 화강암 축대에 무지개 문(홍예문)을 내고 그 위에 중층으로 지어진 숭례문은 장엄미와 화려함을 동시에 갖췄다. 용마루 끝에는 독수리 모양의 망새가 하늘로 날아갈듯 하다. 기둥머리 외에도 포(包)를 장식한 다포(多包)집으로 처마허리곡선이 있는 여타 목조건물과 달리 직선을 취하고 있어 강건한 맛을 풍긴다.

이런 숭례문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됐으니 그 애석함을 필설로 표현하기 조차 어렵다.

불행 중 다행히 설계도가 남아 있어 수년이면 복원이 가능하다고 하나 복원된 숭례문은 짝퉁 숭례문일 뿐, 그 본원적 가치를 잃게 된다. 복원된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서의 가치가 없다.

이처럼 문화재는 한 번 파괴되면 제 모습을 복구하기가 불가능하다. 행주대교처럼 철근 콘크리트로 재현할 수 없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화재는 아무래도 문화경시 풍조가 가져다준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도내에도 수많은 목조 문화재가 있다.

속리산 팔상전은 우리나라에서 하나뿐인 목탑이다. 그런데 이런 국보에 스프링 클러가 설치됐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애통한 일이나 숭례문 화재를 거울삼아 더이상 문화재가 소실되는 일이 없도록 저마다 마음가짐을 다져봐야 할 것이다. 문화재 관리의 효율적 방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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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