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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9.02 17:59:5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재은

충북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평생 외길을 걸어온 학자들이 있다. 정갈한 옷차림에 흰 머리 희끗희끗한 모습과 인자한 표정은 누가 봐도 긴 세월동안 학문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온 학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주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많은 분들이 함께하면서도 조용하고 품격 넘치는 정년퇴임 기념식이 있었다. 같은 학과에 계시는 교수님이 정년퇴임을 맞이하셨기에 참석했다. 물론 이후에도 자주 뵐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공식 자리로는 마지막인 것 같아 다른 일정을 모두 제쳐두고 참석을 하였던 것이다.

그 옛날 공부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시절, 말 그대로 먹기 살기에도 바빴던 시절에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지금 시대에도 공부하는 것이 힘 드는데 말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30년 이상을 재직하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침저녁 같은 길을 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연구 논문의 주제나 쓰고 있는 책의 목차 구성, 대학원생 논문 지도, 아니면 오늘 강의할 내용이나 칼럼 주제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 학자들이 하는 고민과 비슷했을 것이다.

이번에 퇴임하시는 같은 과 교수님은 어쩌다 식사라도 같이하시면 교수로서 지켜나가야 할 품위에 대해 강조하시곤 했다. 이제는 뇌리에 꽉 박혀있을 정도다. 교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교수는 돈 얘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교수에게는 논문이나 책 쓰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매 학기 초, 대학은 역시 학생들이 북적거려야 활기가 나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 맞장구를 쳐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 대학원생 시절, 대학 동기들 모임에 나가면 간혹 친구들이 정말 의아하게 묻곤 했다. 그렇게 공부가 좋으니· 그 시절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인 신촌에서 청바지에 티셔츠 입은 대학원생과 말쑥한 양복 차림의 엘리트 친구들의 만남이 약간 어색했을 수도 있지만, 당당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공부를 사랑하는 예비 학자들 특유의 독특한 자부심 덕분이었으리라.

시간을 좀 더 뒤로 거슬러 올라가보니, 내 뒤에는 항상 은사님께서 든든하게 버티고 계셨던 것을 느낀다. 학문의 길을 천직으로 아시고 실천하시면서 사셨던 분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어린 학부생들에게도 몸소 학자의 진지함을 보여 주셨던 분이셨다. 학부 4학년 2학기 기말고사 시간이었다. 수학으로 의사결정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목이었기에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은 거의 신청을 하지 않는 과목이었다. 그리고 그 과목의 시험시간은 3시간이었다. 12월 둘째 주 날씨는 3시간의 시험을 봐야하는 학생들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고, 교수님은 맨 뒤에 앉으셔서 3시간 동안 성경을 읽고 계셨다. 시험이 끝난 후, 시험을 본 6명의 학생들은 대학에서의 마지막 시험의 답이 무엇인지 맞춰보느라 분주했다. 모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터라 자신감을 갖고 교수님께 달려갔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나는 교수님께 정답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교수님께서는 집에 가셔서 다시 풀어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음 날, 연구실로 다시 찾아간 학생들에게 교수님께선 다시 풀어본 결과 답이 없다는 판정을 내려주셨다. 그 며칠 후,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교수님은 내게 연구실로 들어와 조교로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덕분일까, 지금도 나는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은사님께 상의드리고, 은사님의 든든한 후원 덕분에 당당하게 학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아름다운 원로 학자들의 단아한 모습을 새기면서, 나 또한 그 삶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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