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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하면 우선 제수를 준비하는 대목장이 번성했다. 엄밀히 얘기하면‘제수용품’이 아니라‘차례용품’인데 우리는 그냥 혼동하여 부르고 있다.

시장 난전에는 제수용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색동저고리, 다홍치마 등 설빔이 즐비했다. 설빔을 산 아이들은 머리 맡에 설빔과 새로 산 신발을 두고 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징검다리 건너 떡방아간은 힘찬 소리를 내며 가래떡을 연이어 토해냈고 아낙네들은 떡 광주리를 길게 늘어놓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조청이나 꿀을 찍어 먹어야 제 맛이다. 가래떡은 하루 이틀은 굳힌 다음 떡썰기에 들어간다.

어머니의 떡 썰기 솜씨는 일품이다.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떡 첨이 일정한데 아이들이 따라 하려면 울퉁불퉁, 때깔이 곱지 않다.

설빔은 왜 그리 크던지…. 어머니는 “아이들은 금방 크는 거야”하시며 언제나 몇 치수 큰 옷을 사 입혔다. 그 설빔은 소매나 바지 단을 몇 번이나 걷어 올려야 입을 수 있었고 그 옷이 맞을 정도로 성장하면 옷은 이미 낡아 입을 수가 없었다.

요즘 대목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대형마트에 자리를 내줘 그런지 찬바람이 휙휙 돈다. 가래떡을 뽑아다 시누, 올케 둘러앉아 떡을 써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기계로 썰은 떡이나 만두피를 슈퍼에서 사다 떡국을 끓이는 집도 많다. 설빔을 놓고 투정하는 아이들도 거의 없다. 일년내내 좋은 옷을 입고 사니까 굳이 새 옷과 새 신발을 찾을 이유도 없다.

설날아침 목욕을 하고 설빔을 차려입은 다음 차례를 지낸다. 요즈음은 차례 상을 차리며 조상님 대하기가 무척이나 민망하다. 차례 상에 법도대로 올려놓는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동두서미 등 여러 음식이 절반이상 중국산이기 때문이다. 미국산이나 호주산 쇠고기를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조상님들이 국제화를 알까마는 그래도 한·미 FTA 체결과 중국과의 무역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차례를 지내는 순서조차도 주자(朱子)가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차례를 지나고 나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떡국, 세찬(歲饌), 세주(歲酒)를 먹고 마시며 피붙이를 확인한다. 그다음은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세배시간이다. 어른들께 세배를 하면“올해도 건강해라” “올해는 승진해야지”하는 덕담과 더불어 얼마간의 세뱃돈을 준다. 아이들은 친척 집을 돌며 세배를 하고 어른들은 미리 은행에서 빳빳한 신권을 마련한다. 요즘은 65세 이상 고령자의 40%가 빈곤층이라고 하니 세뱃돈도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드디어 설날 황금의 연휴가 시작됐다. 대부분의 직장이 주 5일제이므로 최장 5일간은 쉬게 됐다. 스태그플레이션 속에 서민들은 설 쇠기도 대간한데 해외여행을 떠나는 행락객들의 발길이 공항을 메우고 있다. 동남아, 중국 등지로 가는 항공권은 벌써 동이 났다는 것이다. 차례나 성묘는 미리 지내고 다녀온 다음 동남아 등지로 가족여행이나 골프 투어에 나서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 나눠 먹는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가 산업화, 정보화 시대로 접어들며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여파는 소위‘명절의 양극화 현상’까지 빚어내고 있다. 며느리들에게는 설 연휴가 반갑지마는 않다. 오히려 여성계에서는 명절 연휴를‘노동절’이라고 까지 칭한다. 장보기에서부터 차례상차리기는 물론 손님접대, 식구 뒷바라지하기 등 온갖 집안일이 여성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통에 명절이 가까워 오면 벌써 머리가 아프다는 둥 명절 주부 스트레스 증후군이 찾아든다. 남자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일품을 훨씬 덜어줄 텐데 그처럼 자상한 남편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장보기나 집안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은 남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성들의 일품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서로 돕는다면 ‘노동절’이‘왕비주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

설날 놀이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종래에는 윷놀이가 대부분이었는데 어느 틈엔가 일본식‘고 스톱’문화가 설날이면 판을 치고 있다. ‘쓰리 고’는 영어이고 ‘고도리’는 일본 말이다. 3 개 국어가 섞인 국적불명의 화투놀이를 하필이면 설날 아침에 시작하는 것일까. 윷놀이와 더불어 벼슬길에 오르는 승경도(陞卿圖)나 쌍육 같은 우리의 놀이도 많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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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