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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8.02 14:25: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겁없는 막내' 김장미(20·부산시청)가 한국 여자 사격에 20년 만에 금메달을 안겼다.

김장미는 1일(한국시간) 런던 울리치에 있는 왕립포병대기지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여자 사격 25m 권총 결선에서 201.4점을 쏴 본선 591점과 합쳐 합계 792.4점을 기록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 사격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딴 여갑순 이후 20년만이다.

공기소총에서만 올림픽 메달을 땄을 뿐 공기권총이나 권총에서는 빈손이었다. 한국 여자 사격이 권총에서 메달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장미는 금메달을 따내 한국 사격에 이번 올림픽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사격의 '간판' 진종오(33·KT)가 지난달 29일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바 있다. 한국 선수단의 4번째 금메달이다.

올해 4월 25m 권총 합계 세계기록(796.9점)을 세웠던 김장미는 본선에서부터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김장미는 본선에서 591점을 쏴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루나 타오(호주)가 세운 올림픽기록(590점)을 갈아치웠다.

5분에 5발씩 총 30발을 쏘는 완사(300점 만점)에서 298점을 쏜 김장미는 3초에 1발씩 총 30발을 쏘는 급사(300점 만점)에서 293점을 기록했다.

2위에 오른 타니야폰 프룩사콘(22·태국)에게 무려 5점차나 앞서 김장미의 금메달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하지만 결선에서 김장미는 강력한 라이벌로 꼽힌 베테랑 천잉(35·중국)의 추격을 피하지 못했다.

김장미는 첫 시리즈에서 5발 가운데 한 발을 제외하고 모두 10점대 표적에 쏘며 51.2점을 기록, 선두 자리를 지켰다. 첫 시리즈에서 52점을 기록한 천잉이 김장미를 바짝 추격했다.

두 번째 시리즈에서 49.1점을 쏘는데 그친 김장미는 천잉의 추격을 피하지 못했다. 천잉은 두 번째 시리즈에서 51.6점을 기록하며 김장미를 턱밑까지 따라붙었다.

결국 김장미는 세 번째 시리즈에서 천잉에게 역전을 허용했다. 김장미는 세 번째 시리즈에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9점대를 세 차례나 쏴 49.3점에 그쳤다. 세 번째 시리즈에서 52.8점을 쏜 천잉은 김장미에게 0.8점차로 앞섰다.

김장미의 '강심장'은 마지막 시리즈에서 발휘됐다. 김장미는 마지막 시리즈에서 5발을 모두 10점대 과녁에 명중시켰다. 마지막 시리즈에서 김장미가 따낸 점수는 51.8점이었다.

천잉이 마지막 시리즈에서 9점을 두 번이나 쏘며 흔들리며 50점을 기록하면서 김장미는 1점차로 금메달을 확정짓게 됐다. 김장미는 금메달이 확정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기쁨을 만끽했다.

천잉은 본선 585점, 결선 206.4점을 합해 총 791.4점으로 은메달을 가져갔다. 올레나 코스테비치(27·우크라이나)가 788.6점(본선 585점·결선 203.6점)으로 동메달을 땄다.

기사제공:뉴시스(http://ww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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