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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6.11 15:28:2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봉우

충북대 교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인간성은 사람다운 품성으로 가져야 할 개인과 그 사회 구성원의 공유와 이해다.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유대감 공감대 협력시대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지구촌의 단어들이다. 인간다움은 상대에 대한 적대감이나 폭력과 파괴의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왕따, 공격성, 무력진압, 독재, 억압 등 폭력성의 목적은 대부분 인간의 소유욕과 잔인성에서 비롯된다. 즉 남을 복종시키고 다스리려는 지배적 욕망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자하는 이기심이다.

그런데 요즈음 연일 보도되는 사회의 비리를 보면 심상치 않다. 사회 전반의 부조리와 비리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아노미(Anomie) 같다. 즉 공통된 가치관과 목적이나 이상이 상실된 사회적 인간성 파괴다. 협력과 화해의 부재에 시달리는 정치 특권 의식의 다툼이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예로 아직 학교폭력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폭력과의 전쟁을 선언한지 엊그제, 금방 소탕할 것 같은 단호함이 생생하다. 그러나 베어도 움돋이처럼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살인적인 사금융, 공직선거파행, 무차별 살인, 학생의 교사 구타, 왕따 패거리, 자살 등 사회병리적인 현상은 끊이지 않는다.

무차별 성폭행 후, 토막 살인하여 수돗가에 혈흔을 없애고 검은 봉지에 시신을 담아 그 옆에서 태연히 잠을 잔다. 고등생 공부를 다그치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부패가 진동하는 한 지붕에 친구들을 불러들인다. 우르바흐-비테 증후군(Urbach-Wiethe Syndrome)이다.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회적 유대감이나 공감대가 상실한 마치 원수 증후군 같다. 뇌의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 기능 질환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오랜 사회적 병폐에 찌든 인간성 파괴 증후군이다.

이런 행위를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일어나는 두려움과 공포의 상실 증후군이다. 이를 클뤼버-부시 증후군(Kluever-Pusy syndrome)이라 한다.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겁이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려 한다. 고양이를 보면 도망가야 할 쥐가 오히려 태연하게 고양이 머리위에 올라가 있는 형국이다. 생태계 먹이사슬의 혼란이다. 두려움과 공포를 잊은 행위에 인간은 경악하기 마련이다. 이런 몹쓸 증후군의 폐단은 공동체의 기본적인 배려의식으로 치유되는 것들이다.

선진 의식은 평범한 것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된다. 먼저 인사 한다. 환한 미소로 상대의 눈빛을 노크한다. 마주치는 경우 먼저 양보하려 다투는 현상이다. 상대 운전자에게 양보도 서슴없다.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양보는 필수다. 턱 없이 멀리 오는 보행자를 미리 기다리는 선진운전자. 분명 아름다운 질서의식이다. 쉽게 베풀 수 있는 착한 마음은 선진의식의 기본이다. 다 아는 얘기다. 실천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런 사회 차이에 있다.

실질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선진 의식이 없이 소득수준만 높은 것은 폭력과 공격성의 표적이 된다. 소득에 걸맞은 의식수준이 없다면 언젠가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가진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들인다. LA 한인 타운 폭동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훗날 성인사회의 초석이다. 어린 시절부터 먼저 예를 갖추는 아름다움, 먼저 사과하는 겸허함, 먼저 용서하는 관용, 예의범절을 소중히 지키는 배려 조성이다. 시내 무료급식 지원자가 내년까지 줄을 이었다는 것은 여러 증후군처럼 우려할 만한 인성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선진의식은 거창하고 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러 축하 비용을 기꺼이 사회에 내놓는 익명의 사람이 적지 않음은 그래도 세상은 희망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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