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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숙

수성초등학교 교사

"선생님, 5월은 여러 가지 행사가 있어서 너무 바쁘시지요? 몸 건강하게 챙기세요. 저는 선생님 덕분에 이제 공부가 쉬워졌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할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얼마 전, 지난해에 우리 반이었던 수민(가명)이가 열심히 꾸며서 직접 만든 편지봉투에 정성껏 쓴 편지를 담아 수줍은 얼굴로 내게 내민 편지의 내용이다. 저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배려심이 많은 성격을 고스란히 담아 어른스런 말투로 선생님을 챙기는 마음이 느껴져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면 삼삼오오 몰려 인사하는 아이들 속에 가끔 수민이가 섞여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오늘은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이네?', '아침 먹었니?', '어제는 뭐하고 놀았어?' 등으로 인사를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도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수민이와 내가 나누었던 시간이 많기에 그 안에 오가는 우리들의 감정은 남다르다.

학년 초에 진단평가를 하니 몇몇 아이의 성적결과가 좋지 않았다. 학년 초마다 있는 일이라 성적부진의 원인을 여러 방면에서 찾고 해결방법도 생각하며 수업시간마다 그 아이들을 챙겼다. 그 아이들 중 다른 아이들은 수업 중에 발표를 시키거나 개별학습, 가정학습과제를 통하여 부진을 해결할 수 있겠는데 이 아이는 설명을 받아들이는 속도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였다. 10자리 이내의 간단한 덧셈, 뺄셈 그리고 새로운 낱말을 외우게 하는데도 한참이 걸려 어떻게 지도할까 고민이 되었다. 공부시간에 바르게 앉아 있기는 하는데 기가 없어 보였다.

쉬는 시간에는 어떻게 놀까 지켜보니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무척 신나게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이를 하기 위한 의사소통도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판화가 이철수님의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는 글이 떠올랐다.

아이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볼 때는 쉬는 시간에 보았던 신나는 표정인데, 공부이야기로 옮겨지니 표정이 달라졌다. 그 아이를 남겨서 함께 시간을 나누면서 지도를 해야 할 것 같아 부모님께 쪽지를 보내드렸다. '어머님, 시간 나실 때 학교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 오신 어머님께 이런저런 궁금한 사항들을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어머님께서는 얘기 중에 "연년생 동생이 둘이 있어서 공부를 못 시켰어요. 어젯밤에는 학교에 오는 것이 긴장되어 뜬 눈으로 밤을 새웠어요." 하셨다.

어머님의 말씀에 가슴이 저려와 손을 꼭 잡아 드리며 아이의 노는 모습을 보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아이라 생각되어 어머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아이를 지도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던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 힘으로는 부족하니 부모님의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더니 이젠 마음이 편해지셨다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수민이에게 예쁘고 자상한 엄마가 계시고 동생도 둘이나 있어서 좋겠다고 하니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나와의 시간이 즐겁기를 바라며 아이가 좋아하는 가족이야기로 숫자공부를 시키고 쉬운 동화책을 읽어주고 내용을 물어보기도 하고, 나한테 책을 읽어달라고 한 후에 내용을 물어보기도 하며 놀이처럼 시간을 보낸 후에 문제를 풀게 하니 조금씩 달라져 갔다. 일기도 쓰게 하니 공책 2,3줄이었던 일기길이가 때로는 한 쪽을 가득 메우기도 하였다. 월말평가 점수 올리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양한 학습경험을 키워주는데 노력하였다. 방학 때에도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 방법을 가르쳐 주었었는데 나중에는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월말평가 시험점수가 많이 오르게 되자 "선생님, 제가 공부 선수가 된 것 같아요."하며 기뻐하였다.

사람을 기억하거나 어떤 일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교사이기에 아이들이 나와 만날 때 사랑과 진심으로 대하고 스스로가 귀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어 마음에 울림이 있는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며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울림이 있는 좋은 하루가 되고 좋은 하루하루가 모여 풍요로운 삶이 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부쩍 자란 수민아, 열심히 노력해 주어 고맙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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