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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

충주공고교사/에세이스트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제게 허락된 시간으로는 그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순 없었습니다.

가만히, 찬찬히, 곰곰이 들여다보면, 삶이란 게 어느 하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다른 하나를 새롭게 맞아들일 수 없다는 이치를 지닌 것이지요.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겠습니다. 말씀 드리죠.

오늘 밤 9시 45분에 시내의 시네마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첫 번째 계획이었습니다. 제목은 ··야곱 신부의 편지(Letters to Father Jacob, 2009)··로서 핀란드 영화였죠.

그 영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사람들이 보낸 편지의 내용에 따라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눈 먼 야곱 신부가 내뿜는 아우라(aura)에 잠깐만이라도 눈이 멀고 싶었던 것이 하나요, 자일리톨껌과 앵그리 버드(Angry Birds) 게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핀란드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확장시켜 보고픈 뜻이 둘째였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대신에, 오늘 하루가 다가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하고, 생각의 바다 위에 배처럼 둥둥 띄어보고도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중물(priming water)··이란 말이었습니다.

펌프에서 물이 잘 안 나올 때 물을 끌어올리려고 위에서 붓는 물, 그게 바로 마중물이란 걸 모르시는 분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주변에서 펌프 보는 일이 드물게 되니, 예전처럼 마중물 대할 일도 없다시피 하군요. 이런 느낌을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할 수 있겠죠.

··마중물을 부어라!··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우레처럼 들려오지 않으시는가요·

탤런트 정애리는 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마중물 번개팅··이란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단지 만나서 웃고 떠들고 먹다가 끝나는 반짝 팬 미팅이 아닌 거죠. 진정으로 가슴을 열고 서로의 삶을 나누는 만남의 시간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인 신현림의 다음 시에 나오는 ··울음··은 마중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군요.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창문 밖에서/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자화상)

해마다 5월이면, 유난히도 나무를 사랑하던 고(故) 한영제 목사를 그리워합니다.

신록이 눈부시도록 아름답던 날에 환한 웃음으로 작별의 손을 흔들며 이 세상을 떠난 그분은 누구도 마중물을 붓지 않고서는 하늘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답니다.

우리들이 서 있는 곳에서 마중물을 부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선한 영향력이 곧 이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마중물임을 기억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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