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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충북대 교수

도종환이라고 다 나쁩니까? 1997년 여름 어느날 충북의 유지들이 '한국사회의 공적(公賊) 도종환'을 신랄하게 성토하는 중에 나온 발언이다. 그 중 어떤 분은 서점에 진열된 도종환 시인의 시집을 보고 저런 사람의 책은 읽지도 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종환 시인의 언행을 성토했다. 가령 1996년 2월 기미독립선언의 33인 중의 한 사람이지만 변절한 일급 친일인사 정춘수 동상을 해체한 것으로부터 전교조 결성에 이르기까지 도종환은 이 사회의 공적임에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분들은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경쟁하듯 왜곡하면서 도종환 시인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각색시켰다. 이런 시인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문인(文人)으로부터 저런 사람이 학교 선생이라는 것에 대하여 같은 교육자로 사죄한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각종 성토 경쟁이 벌어졌다. 이때 한 분이 듣다 못해서 '왜 도종환이라고 다 나쁩니까?'라고 항변을 했다. 협량(狹量)한 사회지도자들을 한탄하면서 회상하던 그날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고 한국사회는 변화의 기로에 섰다.

이 이상한 문장의 내면구조는 이렇다. '도종환은 나쁘다. 하지만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이 문장에서 '나쁘다'는 정언명제의 확신이고 '있을 것이다'는 가언명제의 추론이므로 확신인 정언명제가 훨씬 더 힘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도종환 시인을 변호할 수 없는 험악한 분위기여서 '도종환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라는 반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사회지도자들은 항변하는 김회장을 응시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느냐·'라는 반응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들의 세계관은, 도종환은 단 하나도 좋은 점이 없다는 극단적인 적대감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놀라운 발화가 생산되었다. '도종환 시인은 여러 면에서 괜찮은 사람이니, 이번 국회의원 당선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은 15년 전에 도종환 시인을 적극적으로 비난했던 사람들 중 한 분이다. 낙화유수런가,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런가(光陰者 百代之過客)? 도저히 풀 수 없는 시간의 방정식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과거 도종환 시인을 비난했던 분들과 보수집단이 돌연 태도가 바뀌어 국회의원 도종환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시각과 태도는 어땠을까? 대다수의 지인들은 도종환 시인의 국회진출을 비판하고 또 안타까워했다. 도종환 시인의 절친한 지기(知己) 이철수 판화가가 대표적이다. 이철수 선생은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 비례대표 상위명단에 포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삼일간 거의 식사를 못했으며 도종환 시인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애정어린 실망이 복받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민단체나 민중단체의 상당수는 강력한 비판과 심각한 우려를 보냈다. 그 이유는 정치판에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또 시인으로서의 의미도 상실하기 쉬우며, 교육자로 쌓아온 가치도 허물어질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도종환 시인에 대한 태도가 역전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세월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또 있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을 마치는 날, 오늘 도종환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다시 또 극단적인 비난으로 돌아설 것이고 오늘 도종환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그간의 노고를 위로할 것이다. 조변석개하는 시류가 한탄스럽지만 어쩔 것인가, 세상은 그런 것인데--. 당의 시인 설도(薛濤)의 가작 <춘망사(春望詞)> 한 대목을 도종환 의원께 드린다. '풍화일장로(風花日將老),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기기유묘묘(佳期猶渺渺), 우리 만날 그날은 아득하기만 하다.' 부디 난장의 정치판에서 시인의 이름이 덜 상하고 또 마음이 덜 다치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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