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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2.02.28 08:38:0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상원

농촌진흥청 인삼약초가공팀 연구관

요즘 우리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남성의 경우도 8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평균수명이므로 실제로는 많은 국민들이 80세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지금만의 세태가 아니고 과거로부터 있어왔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도 처음부터 사람이 타고난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120세를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라고 보았다. 사람들의 건강하고 오래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의학의 목표이다.

동의보감에서도 우리 사람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오래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맨 앞에 두었다. '어떻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양생(養生)이라고 한다. 생명연장과 건강생활의 동의보감 표현은 "연년익수(延年益壽)"이다. 이를 위해 동의보감에 허준선생께서 첫 머리에 제시한 한약은 경옥고(瓊玉膏)다. 경옥고는 인삼과 지황, 복령을 재료로 제조한다. 인삼, 약초, 버섯을 사용한 약인 것이다. 이 세가지 약재를 좋은 꿀에 버무려서 뜨거운 불과 차가운 물로 양기와 음기를 불어넣어 만드는 약이 바로 경옥고이다.

본초의 근간이 되는 '신농본초경'은 약을 상·중·하로 나눠놓았다. 인삼은 상약(上藥)의 첫 번째로 실린 약재다. 모든 약의 으뜸이란 뜻이다. 고려인삼은 이처럼 가장 중요한 약재이다. 인터넷이나 서적들을 찾아보면 1.5~10g, 많게는 한번에 30g이상 먹는다고 되어 있다. 먹는 사람은 골치 아픈 문제다. 그래서 인삼의 적정한 복용량이 필요하다.

인삼은 다른 채소들과 달리 옛부터 750g을 1채라고 부른다. 또 백삼의 경우는 300g을 단위로 한다. 허준선생님은 동의보감을 지으면서 건조 한약에 대해 1돈(錢)을 기준으로 하였는데 바로 3.75g이다. 하루 2첩(貼)이 복용량이다. 1일 3회 복용에서 중간은 두첩을 재탕으로 하게되니 계산에서 뺀다. 1재는 20첩으로 10일이 치료기간이다. 1일에 사용되는 무게는 7.5g이고, 10일 75g이고, 1달 치료는 225g이 사용된다. 수삼을 건조하여 백삼으로 만들면 60%가 줄어 300g정도 된다. 그래서 750g이 수삼의 기초단위가 된 것이다.

몇 뿌리짜리를 샀는지 기억한다면 하루에 얼만큼 먹어야 하는지 대략 계산할 수 있다. 1채를 60으로 나누면 1회 섭취량이 된다. 대략 1일 복용량은 수삼으로 25g정도가 된다. 1채 20뿌리짜리라면 하루 복용량은 1뿌리정도다. 만일 10뿌리짜리 수삼을 가지고 있다면 반 뿌리가 한의학적으로 적당한 양이 되겠다.

농촌진흥청 인삼특작부에서는 한의학적이고 과학적인 포장단위와 방법을 연구하여 개선된 숨쉬는 포장재를 개발하였다. 지금의 1채 단위는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한 달을 기준으로하기 때문에 보관과 섭취가 어렵다. 실생활에 맞게 10일단위의 수삼판매가 되어야 일상생활에서 쉽게 구매하여 드실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 고려인삼을 실생활에서 더욱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연구성과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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