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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진천군의원

겨울 꽃잠에서 막 깨어나 눈을 뜨려는 2월이다.

이즈음은 온통 졸업 소식으로 왁자글한데 나는 자꾸 기분이 가라앉고 있다.

아마도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백곡중학교란 이름이란 달고 마지막으로 치뤄지는 졸업의식이다.

제 1회 졸업증서를 내게 주었던 학교가 서른아홉 해를 끝으로 문패를 내리게 된 것이다.

각 학교에서는 졸업의 숭고한 의미보다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그릇된 졸업식 뒷풀이 풍조를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이다.

어찌된 일인지 몇 해 전부터 이상한 졸업식 퍼포먼스가 맑은 물에 녹조 번지듯 얼룩을 들여온 터였으니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졸업(卒業)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이나 학문 따위에 통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등록한 학교나 학원의 학업 과정을 마침을 뜻하지만 한자어가 의미하는 卒(졸)은 대개 보잘것없고 만만한 존재를 속되게 이르거나 사람의 이력(履歷) 따위에서,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연유로, 한 과정을 마치는 의식에 대해 卒(졸)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글자로만 보면 그다지 성스럽거나 희망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학교 과정을 구속으로만 느끼고 있을 물정 모르는 요즈음 아이들. 그들은 형체도 없이 다가와 억누르는 각종압박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의식의 일환으로 이상한 뒷풀이를 생각해 냈는지 모른다.

그간 자신도 모르게 제 몸을 보호해 주었던 교복의 상징성을 뒤로한 채 교복을 찢고, 벗고, 계란으로 치고, 밀가루를 하얗게 덮는 행위 등을 통해 그들이 처한 갈등을 卒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깨 위에서 빛나던 하얀 교복 칼라는 쌀밥보다 더 큰 힘을 주었다. 휘휘 돌던 교복은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빛이 바래지고 손목, 발목이 덜렁 드러날 만큼 깡동해진 것조차 대견했던 그 시절 졸업은 말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날 부모님들은 없는 돈을 겨우 마련하여 꽃목걸이 걸어주며 등 다독여 자장면을 먹여 주셨다.

비록 철없는 아이지만 가슴 한켠 울컥했던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본능적인 감사였으리라. 그랬다. 졸업식 날의 풍경은 애틋함이 교감되는 그런 거였다.

나의 모교 백곡중학교가 영원히 문을 닫는 운명을 맞고 있음이다. 찾아올 학생이 더 이상 없다는 현실에 마음이 시리다.

마지막 졸업의식을 끝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으로만 남을 이 학교는 내게 특별했다. 시골 면단위까지 중학교 무시험제도가 전격 시행되던 1971년에 세워졌고 나는 무시험 첫 수혜자이며 첫 번 째 입학생이 된 까닭이다.

한반에 육십 네댓 명 씩 두 학급, 모두 130명으로 문을 연 학교가 서른아홉 해를 거치는 동안 학생들이 차츰 줄어들어 지금은 전교생이 고작 18명이다.

올해 10명의 졸업생을 끝으로 남은 학생은 2학년 2명, 1학년이 6명이다. 내년부터 이들은 읍내 진천중학교와 여자중학교로 각각 편입이 된다.

아이들 웃음 잦아든 학교, 더 이상 찾아올 아이가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학교, 아기 울음소리 사라진 시골마을에는 이국에 온 앳된 새댁들이 겨우 적막을 깨우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내 아이 안고 예방주사 맞추러 보건소에 들리던 그때만 해도 둘만 낳아 잘 기르라며 손 붙들고 불임수술을 권하던 그 여직원이 지금은 출산장려금 줄 터이니 아기 낳아 애국하라며 매달리고 있는 실정에 아득한 멀미가 인다.

넷째아이 출산 시 500만원!, 다섯째아이를 출산하면 1천만원!,

우리군에서 현상금처럼 내걸은 출산장려금 지급액이 허허롭게 펄렁댄다.

마지막 졸업생을 내보낸 폐교의 운동장을 휘돌던 2월 매운 바람살이 갈 곳 몰라 가슴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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