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지미영

제천문학 회원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언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도 좁고 길 다란 언덕으로.....

남천동 천주교 건너편에 위치한 우리 집은 아래 동네에 공동우물이 있었고 그 위를 숨차게 올라가면 큰 플라타너스 나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당이 넓어 한 가운데에 미군들이 쓰다 버린 아름드리 철제통이 있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붕어나 잉어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던 생각이 난다. 낚시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수시로 잡아다 통 속에 넣었는데 잉어로 매운탕을 끓여먹었다던가 붕어를 보며 놀았던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냥 아버지의 취미였을 뿐이다.

할머니까지 여덟 식구였던 우리 집은 어머니가 늘 편물과 손뜨개를 했기 때문에 5남매 중 장녀인 나를 위시해 딸 셋은 선택할 여지도 없이 겨울이면 솜씨 좋은 엄마가 뜬 주머니 달린 털스웨터와 털 바지를 입었다.

추운 겨울날 길을 가다보면 동네 아주머니가 내 팔을 붙들고,

"아유! 옷도 참 잘 떴구나. 너희 엄마가 뜬 거니·" 하고 요리조리 옷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유일하게 옷을 선택할 기회는 추석과 설날이어서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 속에 명절날 하얀 티셔츠에 꽃무늬 나팔바지를 입은 세자매의 모습이 그 시절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아쉽게도 난 엄마의 솜씨를 닮지 못해 신혼 때 남편 조끼를 뜨다가 어깨 모양 만들기를 포기하고 이웃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완성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묻어난다.

언덕 위라서 그런지 수도가 없었던 우리 집은 빨래는 개울에 나가서 하고 먹는 물은 우물물을 길어다 해결 했었다.

가끔은 고등학교 다니는 외삼촌이 집에 와서 누나를 위해 양동이 가득 물을 길어다 주기도 했다.

9살까지 살았던 남천동의 시절은 무엇보다도 천주교회의 추억이 아련하고 그립다.

수녀님들이 거니는 넓은 성당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까만색의 콩알만 한 열매를 입이 시커멓도록 따먹기도 하고 싫증이 나면 달리기를 했다.

숨이 차오면 달리던 것을 멈추고 토끼풀을 뜯어 반지와 화관을 만들었다.

아이들 중에는 화관을 유달리 잘 만드는 얘가 있었는데 손놀림도 재빨라 어느새 미스코리아 왕관 같은 근사한 화관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눈부시게 하얀 토끼풀 화관을 먼저 써보려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곤 했는데 그 아이도 우리 어머니만큼이나 손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3학년 때 새로 지은 주택으로 이사를 가니 집도 좋고 수돗물도 원 없이 잘나와 마냥 신났지만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언덕위의 그 집만큼 아기자기한 추억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 작은 사찰에 알밤이 후드득 떨어지던 그 옛날의 추억을 돌아보려 남천동을 찾았다. 칠십을 넘기신 어머니와 서울서 온 두 여동생 , 스무 살이 넘은 내 딸과 여동생 아들까지 데리고 그 언덕을 올라갔다.

사찰은 그대로 있지만 이미 우리 집은 사라지고 낯선 주택이 들어서 있다. 어머니는 새댁시절 편물하면서 연년생 여동생까지 키우느라 고달팠던 기억이 새삼스러운지 도리질을 치셨다.

내 아들이 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는데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왜그리 또렷한지!

기억력 없다는 말이 무색하다.

길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그 언덕을 가슴 먹먹하게 발걸음 세며 내려오다 보니 문득 지금이 행복하다고 느껴졌다.

맘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순간이 왜 없었겠냐만 어머니의 기도로 우리가 이렇게 탈없이 성장했고 가정을 이뤘으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늘 힘썼으니 말이다.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왔으나 부족한 것 또한 너무 많아, 유년의 길을 다시 돌아보는 지천명의 여로에서 알 수 없는 회한과 그리움이 번갈아 밀려왔다.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