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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중

전 충북도 농정국장

계절은 분명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겨울답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눈이 내렸어도 몇 번은 내렸을 법한데도 말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는 이상 기후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면서, 앞으로는 기온이 더 올라가면서 겨울이 점점 짧아질 것이라고 경고 한다. 그래서 2050년경이 되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겨울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오르는 구룡산 양지바른 곳에도 이맘때쯤이면 나무들이 마땅히 하얀 눈 이불을 덮어쓰고 있어야 할 때지만, 유독 개나리와 진달래가 언제부턴가 하나둘 성급한 꽃 봉우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함께 오랜만에 나가본 골프장 페어웨이에도 여름내 푸르기만 하던 잔디들이 가을이 깊어 가면서 누렇게 색이 바래져 잔디인지 황토 흙인지를 구분하기도 쉽지 않더니만, 무심코 내려다본 발 밑 에서는 봄에나 볼 수 있는 여린 초록 잔디 새싹이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 늦가을부터 계속돼온 영상(零上)의 포근한 날씨가 식물들을 충분히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모양이다. 이러다가는 금년은 혹시라도 겨울을 훌쩍 건너뛰고 막 바로 봄으로 계절이 바뀌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혼자만의 착각 이었나 보다.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 지난주에는 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금년 들어 첫 눈이라 할 수 있는, 그래서 아직은 덜 여문 과일 같은 하얀 눈송이가 바람에 실려 춤을 추며 내려오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얀 눈이 내리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송이는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철새들이 뒤 따르는 동료들에게 길을 안내 해주려고 듬성듬성 뿌려 놓은 보드라운 솜털이 하늘에서 강추위를 만나 서로를 부둥켜 끌어안고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 성격이 다른 이야기지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어버이는 어버이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면서, 같은 차원에서 4계절도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엔 녹음이 짙어지고, 가을엔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겨울엔 하얀 눈이 내리는 그야말로 계절에 걸 맞는 변화가 있어야 제격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말 할 것도 없이 겨울은 겨울다워야 제멋이 난다는 것을 강조 하고 싶어서다.

회색 도시 속 세상살이에 찌들려 어쩔 수 없이 구겨지고 오염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살이라면, 이 겨울 만이라도 눈이 부시도록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 지치고 아픈 상처를 어루 만져주고 덮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마치 천주교 신자들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통해 일상에서 지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귤이 노랗게 익어 가면 의사들 가슴은 파랗게 멍이 든다.'는 말이 있다. 비타민이 풍부한 귤을 많이 먹게 되면 건강해져서 병원에 오는 환자가 줄어든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아무리 겨울이 겨울다워야 한다고 해도 또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의 많은 눈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눈 세상에서 뛰놀던 추억들이 뇌리에서 잊혀 지지 않을 정도의 눈만 내렸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눈싸움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고, 숯검정으로 단장을 한 눈사람도 보고 싶다. 달랑 한 장 매달려 있는 달력이 차마 애처롭게 보인다. 내리는 함박눈을 보면서 다사다난 했던 한해를 마무리 하고, '흙 용띠'라고 하는 신년 새해를 알차게 설계하는 12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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