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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근

변호사

지난 11월 11일 아침 출근하려는데 보니, 중학교 1학년인 큰애 책가방 앞에 빼빼로가 잔뜩 쌓여 있었다. 빼빼로데이에 친구들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양이 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았다. 아이에게 "왜 그리 많냐"고 물으니, "반 친구들 모두에게 돌려야 한다"고 했다. "친한 친구들에게만 주면 되지 않느냐"고 조금은 짜증섞인 말투로 맞서니,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말하였다. 녀석은 자신의 한 달 용돈의 절반이 넘는 돈을 빼빼로에 투자하였다. 집 밖으로 나오니, 바로 옆 편의점은 잔뜩 쌓여있는 빼빼로와 그것을 사려는 학생들로 무척 붐볐다.

빼빼로데이는 우리나라에서 생겨난 기념일이라고 한다. 다 알다시피, 11월 11일의 숫자모양과 빼빼로를 나란히 세워놓은 모습이 비슷한 것에 착안한 것이다. 이 기념일의 유래에 대해서는 1990년대 중반 부산의 여중생들이 친구들에게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며 빼빼로를 선물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등 여러 말이 있지만, 그것이 전국적으로 널리 보급되는 데에는 빼빼로 제조사의 상술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혹자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제조사의 위와 같은 상술을 비난한다. 그렇지만 난 그에 앞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허례허식을 짚어보고 싶다.

빼빼로데이에 친구들 사이에 빼빼로를 주고받는 참뜻은 친구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다. 물론 내 아이처럼 반 아이들 전부에게 빼빼로를 돌리다 보면, 전에는 별로 가까이 지내지 않던 아이들에도 마음을 쓰게 되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씀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찰과 이해를 통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의한 천박하고 획일적인 풍토에서 일시적으로 생겨난 것이라 깊이가 없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컵처럼, 그것은 소모적이다. 이런 것을 통해서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마음씀으로 인간관계에서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고 치부하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빼빼로데이 문제의 근원은 어른들의 허례허식에 있다.

먼저, 아이들 돌잔치를 보자. 천편일률이다. 뷔페식당에서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다 먹고, 그러는 사이 생뚱맞게도 낯선 사람이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본다. 어느 돌잔치에서나 들을 수 있는 식상한 멘트로 손님들의 집중을 유도해 보지만 쉽지 않다.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주인공 아이에게 실, 돈, 연필 같은 것들 가운데 하나를 집어들게 하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같은 시간에 식당 군데군데서 이렇게 비슷한 방식으로 돌잔치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돌잔치를 마치면 아이에게 할 일을 다한 것이 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다를 바 없다. 가족이나 몇몇 친지를 빼놓고는 대부분은 돈봉투 놓고 밥먹는 행사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장례식장 빈소에 길게 늘어선 조화들은 리본에 적힌 것처럼 망자의 죽음을 애도하기 보다는, 유족들이나 조문온 사람들에게 '내가 조화를 보낸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 진심일 것이다.

지난 여름 어머니 칠순잔치가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가족을 모시고 조용한 식당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사회를 보고, 형님이 어머님과 친지분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손자, 손녀들이, 서툰 솜씨지만, 그동안 배운 기타, 풀룻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준비를 좀더 알차게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가족들 간에 유대감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평생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소박하게 살다 간 스콧니어링은 생전에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보통의 나무상자에 뉘어 조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고 유언했고, 실제 죽은 뒤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친구들끼리 우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따뜻하고, 다양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른들이 먼저 허례허식을 벗어던지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빼빼로데이의 천박한 행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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