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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1.10.31 16:08: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차를 몰고 가다 보니 노오란 은행잎이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진다. 다른 단풍과도 다르게 참으로 휘황한 낙엽이다. 황금빛깔의 낙엽은 낙화 못지않게 선연히 가슴에 얹혀 진다. 등불처럼 환하게 한 생애를 밝히다가 저렇듯 속절없이 지는 것이 인간의 삶을 닮았구나 싶었다.

요즘 절기와도 어울리는 연극 '염쟁이 유씨'를 보았다. 죽음에 대해 숙고(熟考)하기에는 이른 나이지만 아이들도 같이 데리고 보았다. 한 번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죽음을 다룬 연극이지만 시종일관 유쾌했다. 1인 15역을 열연한 배우 유순웅의 무르익은 연기와 극의 안정된 구도가 죽음을 편안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시신의 염습과정을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핵교에서만 배우는 게 다가 아녀. 어디서든 배우는 것이여."

염쟁이 유씨 말대로 중·고생 아이들은 오늘 처음 장례절차에 염습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국 영화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입던 옷 그대로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봐왔던 아이들은 시신을 닦고 수의로 겹겹이 감싸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나는 죽으면 그냥 관 속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저렇게 붕대로 감싸 놓으면 답답하지 않을까요? 꼭 미라 같아요."

옆에 앉은 작은 아이가 내 귀에 속삭인 것에 대답이라도 하듯 무대의 염쟁이 유씨가 말했다.

"옛날 어른들은 자신의 죽음에 미리 대비하기 위해 환갑만 넘으면 이렇게 깨끗한 수의를 준비혔지. 자식들은 아직 살날이 한참 남았는데 왜 그러시냐고 질색을 혀도 죽음이 있어서 삶이 더 소중한 벱이여."

그렇다. 삶을 마무리하는 매듭이야말로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된다.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에 사람은 무엇 하나라도 족적을 남기고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인생이 그저 끝없이 무한히 펼쳐져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광활한 두려움과 무기력을 불러올 것이다. 작가 김훈은 "나는 죽음의 적막이 두렵다. 내가 죽었다는 것조차 인식할 수 없는 그 무시무시한 적막의 세계가 두렵다."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산문집에서 토로한 적이 있다. 아마 모든 이들의 심정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생애 몸을 받았다는 것은 좀 거창하게 표현해서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물리학자인 장회익 교수가 '나의 나이는 현생인류의 나이와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즉 인류가 태어난 유전인자가 우리 몸속에 있는 것이니 후손이 이어지는 그 날까지 '나'의 몸이 존속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육신의 스러짐은 아무래도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계주의 주자처럼 자식들에게 내 삶의 자리를 잠시 물려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죽음도 그리 두려워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내 삶을 정돈시켜 주고 도중에 쓰러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 달리게 만든다. 배턴터치가 순조롭게 무사히 끝나야 새로운 주자가 또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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