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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前 산소마을 편집장

참으로 못생긴 참외였다. 한쪽은 약간 찌그러져 있는데다가 색깔마저 푸르둥둥했다. 하지만 반대쪽 노오란 부분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흘렀다.

"아빠, 무슨 참외가 그렇게 못생겼어?" 라고 묻는 아이와 "참 오랜만에 보는 귀한 참외지요?"라고 하는 아내의 물음 또한 서로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그랬다. 아내의 말처럼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진짜 참외'였다. 아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유난히 아내를 따르는 학생이 있는데, 그날 아침 교무실 책상에 갖다 놓았더라는 것이다. 아내는 그 참외를 받고 참외 한 상자를 받은 것보다 더 기뻤다고 했다. 두 가지 큰 즐거움을 얻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참외 한 개 갖다 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기다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쏜살같이 교실로 달아나던 아이의 순수함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정말 자연 그대로, 노지에서 햇살로 익은 참외를 보았다는 감격이라고 했다.

나 또한 어린 시절의 참외를 만져보는 감회가 남달랐다. 혹자는 못난 노지 참외 하나에 웬 호들갑이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봄부터 트럭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하우스 참외는 모두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과 다를 바 없는 느낌을 주었다. 과일은 과일이로되 천연의 향기가 빠져 있었다. 노지에서 익는 과일은 천연의 햇살과 바람 맛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작은 과수원을 하시던 조부모님의 손에서 자란 나는 가끔 과수원의 일을 거들어 드리곤 했다. 수박이나 참외를 햇빛의 방향으로 바꾸어 놓기, 포도와 배의 봉지 싸기 등……. 그런데 참외 덩굴 잎에 가려 보이지 않던 녀석들은 미처 눈에 뜨이지 못해 계속 한쪽 방향으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녀석들은 한쪽이 이지러지고 푸른 기가 그대로 남아 있게 마련이었다. 손길이 많이 닿은 참외마저도 조금씩은 꼭지 부분에 푸른 기운이 감돌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참외가 처음부터 노랗게 달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푸른색이었지만 햇살로 달구어져 노랗게 되는 이치를 알지 못한다. 또한 햇살이 듬뿍 배어있는 그 깊고 달큰한 향을 모른다.

올해는 유난히 햇빛이 귀했다. 따라서 과일값이 여느 해보다 유난히 비싸다고 한다. 온실의 온도 조절장치보다 햇살의 눈길로 농익은 과일을 많이 맛보고 싶다. 요즘 나오는 포도나 복숭아는 그래도 과일나무의 키 높이 덕분에 햇빛 아래 익은 것들이 대부분일 터이다.

드넓은 수박밭, 참외밭 사이로 원두막이 있는 과수원에 과일을 사먹으러 가던 풍정이 언제인가부터 사라져 버렸다. 수박과 참외, 딸기 같은 덩굴식물의 과일들은 모두 비닐하우스로 사라져 모양은 예쁘게 단장되었으되 특유의 자연 향기를 잃어버렸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란 시이다. 시골 출신의 세련되지 못한 '못난이'라서인지 오늘처럼 못생긴 참외 얼굴이라도 만나면 그지없이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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