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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의 현대미술산책 - 이완호 화백(1948~2007)

시대 장르·유행 초월…자신의 삶 화폭에 녹여 내린 '화시인'

  • 웹출고시간2011.05.29 17:58: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완호 교수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1977년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에 강의를 하게 된 이후부터 청주에서의 생활이 시작하여 지병으로 200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청주에서 살았으니 그의 인생 60년의 꼭 절반을 청주 사람으로 살았다.

이 교수는 필자의 홍익대학 서양화과 1년 후배로 대학 시절을 함께 지냈다. 그리고 다시 나의 고향 청주에서 함께 대학 교수로 화가로 30년을 지냈으니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생전의 이 교수와 특별히 가깝게 지낸 시간들이 많지 않았다. 벌써 7~8년의 세월이 흐른 얼마 전, 이 교수와 그의 부인 연영애 교수, 나의 아내와 서양화가 손부남씨 부부와 함께 속리산 법주사로 산책을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청주를 방문했던 야마기시 노부오 선생(일본인 평론가)께서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이 교수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되었다. 야마기시 선생은 전후 일본의 현대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평론가의 한 사람이지만, 그의 학문은 동양사상의 대표적 사상인 성리학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퇴계와 율곡의 사상까지 통달할 만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다음날 야마기시 선생은 나와 함께 이 교수의 작업실을 방문하여 그의 작품을 보고는 탄복을 하였다. 조선의 유학의 정신, 즉 심성과 수양을 철저히 하면서도 규범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을 중시하는 사상이 이 교수의 그림 속에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음이 분명하였다. 이 교수는 젊은 시절, 몇 단계의 현대미술에 대한 모색과 실험의 과정을 거치면서 최근의 작품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의 후기시대 작품은 매우 독자적인 회화양식을 만들어낸다.

꽃 Flower

크기 : 80.5×100cm, 재료 : 캔버스 위에 아크릴칼라 +연필, 제작년도 : 2005년 작

그리다 지움을 반복하면서 화면에 남긴 이미지의 흔적들, 여백에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 하면서 남겨진 서체들이 자연스럽게 화면에 스미어 있다. 이러한 그의 그림을 '서한체'(書翰體, Letter-style) 풍이라 부른다. 같은 대학의 동료 교수이면서 미술평론가인 윤우학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쩌면 그는 시공간 속에 필연적으로 소진되어 가는 일상성을 그림으로 노래하고 읊은 '화시인'(畵詩人)으로서 우리에게 비추어질 수 있는 드문 형식의 작가이다." 그렇다, 매우 독특한 그 자신만의 독보적인 회화양식을 만들어 낸 그의 작품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교수는 대학 재학 시절에도 매우 모범적인 학생으로 지도교수를 비롯한 많은 교수들로부터 인정받은 학생이었다. 교수가 된 후, 그는 세심하고 조금은 깐깐한 성격 때문에 활동적이진 않았지만, 순수한 성품과 인격은 존경받는 훌륭한 교육자로서 모든 제자들에게 존경되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그의 작품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난다. 현대미술의 흐름에 무관심 한 듯 독자적 화풍을 이루어내며 중앙화단과의 인연에도 별로 개의치 않으며, 그 많은 갤러리들과의 상업적 인연에도 무관심했던 그의 생활방식 때문에 조금은 무명의 작가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의 존재의 가치는 윤우학 교수의 비평에서 가장 정확하게 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완호의 상대적 익명성은 오히려 돋보인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여 작품을 벗 삼고 작품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번거로운 절차들을 강하게 외면한 채 때로는 외골수 같은 순수성을 보이는 일종의 로맨티스트로서 화단에 잔류했다." 이렇게 이 교수는 우리 시대의 유행과 동떨어져 있는 듯 보였지만, '서한체' 작가 또는 '화시인'이라 부르듯이 문인화적인 요소가 짙은 이 시대의 장르와 유행을 초월한 신선한 작가로 재평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에게서 예술이란 삶과 자연과 그의 인생이 한데 어울려져 있는 진실한 삶의 일체이었다. "나에게 있어 삶은 어떤 의미인지, 그것을 알고 그에 따라서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을 위하여 생활 속에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특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고자 한다." 생전의 이 화백의 작가 노트에는 남긴 글이다. 이렇듯이 이 화백은 자신의 일기를 쓰듯이 자신의 삶을 화폭 위에 녹여 내린 현대미술 속의 독특한 화시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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