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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의 책으로 보는 세상 - 내가 만난 아이들

낙천적 장애아동이 바꾼 하이타니 산교육 이야기
자연과 생명사랑 교육관 성실 낳고 상냠함 만들고

  • 웹출고시간2010.12.26 18:21:5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요즘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교실 붕괴 현장의 뉴스로 세밑이 어지럽다. 교단에 서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나 또한 자칫 언제 그런 기사의 주인공이 될지 알 수 없는, 착잡한 현실이다. '체벌의 적용 여부' '교권 문제' 등 대체 어디서부터 이 적체된 교육 현안을 풀어나가야 할 지 곧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그저 반항하는 정도가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패륜의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생명 경시 풍조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첨단 문명 기기의 발달로 아이들은 점차 자연과 멀어지고 있고, 교실 수업 또한 각종 IT 기술로 전개해야만 '교실 선진화'로 평가받는 세상이다. 요즘 일부 오지의 산골학교에 오히려 도시 아이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은 흙을 통해 아날로그적 생명존중 사상을 가르치고 싶은, 디지털 교육에 대한 반동적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런 즈음의 교육 현실에서 우리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일본 아동문학의 대표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이다. 안타깝게도 2006년 고인이 된 하이타니 겐지로는 궁핍하고 힘들었던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점과 자연의 소중함, 작고 하찮은 것, 소외받는 것들, 아이들의 천진성에 주목하는 작품들을 남겼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아동문학가 권정생과 많이 닮아 있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작품에는 유난히 어려웠던 청소년 시기와 17년간의 교사 생활에서 얻은 자전적 체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책의 주인공들은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아우르고 있어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읽기에 아주 유익한 작품들이 많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 햇살과나무꾼 옮김

특히 <내가 만난 아이들>은 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서 장애를 가졌거나 불우한 아이들의 희망과 낙천성이 그의 교육철학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한 산 기록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 "이 기록은 내가 아이들을 살게 한 기록이 아니라 아이들로 내가 살게 된 기록이다"라고 적음으로써 교육은 서로가 성숙되어가는 상호과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여 주고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에 일관되는 사상이나 정서는 '상냥한 마음'이다. 이는 단순한 상냥함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만 우러나올 수 있는 곡진한 태도를 말한다.

근육이 마비되는 병과 언어 장애를 갖고 있는 마리코는 온몸으로 격렬히 춤추듯 남들보다 몇 배는 느린 속도로 걷는데, 그러기에 오히려 지나치는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작은 생명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벌이 몸 속의 수분을 입 밖으로 내보내는 모습이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을 보고 마리코는 '벌의 비눗방울'이란 시를 짓는다.

가을 운동회 날, 한쪽 다리를 잃은 사토루가 삐걱거리는 의족으로도 힘겹게 달리기 대회에서 완주했던 것은, 자신을 격려해 주는 수많은 군중에 대한 답례로써, 또 선생님의 믿음에 대한 보답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듯 상냥함은 믿음과 존경을 빚어낸다.

소중한 수학여행비로 어머니의 새 물방울 무늬 원피스를 사준 오카모토 료코, 그 아이의 마음에 들어 있던 상냥함은 바로 삶과 인간 자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었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새롭고 놀라웠던 것은 하야시 다케지 선생님의 교육 철학과 수업방식이었다. 내게는 가장 직접적, 실제적으로 교실 현장에 응용할 생생한 도움을 얻은 것이기도 했다. 하야시 선생님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절친했던 동료로서, 2008년 하이타니 겐지로의 생애와 작품 무대를 둘러보는 일본문학기행 시 실제 모습을 뵐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교사의 의도대로 이루어지는 수업은 시시해요.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발언에 교사가 당황하면서도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으며 진행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에요. 그럴 때 허둥거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교사 뿐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허둥거리고 함께 좌충우돌하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허둥거릴 수 있는 능력이라니, 참으로 놀랍고 신선한 발상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철저히 도식화되고 계획된 지도안에 의해 진행되며, 교사의 실수를 최대한 줄인 수업이 수업모델의 가장 훌륭한 전범으로 인식하고 있던 내게 하야시 선생님의 이러한 수업 방식은 하나의 획기적 개안(開眼)이었다.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과 방해하려는 학생을 다르게 대하는 재주가 내게는 없습니다'라는 말도 새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듣는 학생은 칭찬하고, 방해하거나 떠드는 학생은 벌을 주는 방식에 익숙한 대다수의 교사들에게 하야시 선생님의 이 말이 과연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순수하게 학생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교육의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이들의 생활과 교사들의 생활이 분리된 지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문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연 하야시 선생님처럼 아이들이 갖고 있는 것을 꼼꼼히 들여다 보았던가.

이 책은 무엇보다 지금의 내 자리를 돌아보고 점검하게 해 주었다. 인간으로서 교사로서 가져야 할 '상냥함'의 문제, 수업방식과 태도의 문제…….

하이타니 겐지로의 고향이 한국인 밀집 지역이었던 고베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한국인에 대한 내용이 가끔 언급된다. 이 책 속에서도 한국에 대한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6·25전쟁 중에 관한 것이었다. 불우했던 청소년 시절 학교도 못 다니고 공장에 다닐 때 그는 한국 전쟁에 사용될 교각 상판을 만드는데 일부러 용접 부분에 쇠부스러기를 넣어 불량품을 만들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국 전쟁을 통해 이윤을 취하는 것에 저항을 하려 했던 것인데, 그것도 저항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천박했다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없이 나약한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았던 그의 다정다감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의 낙천성은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이며 인간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교육은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통해 교사도 배워야 하고, 교사와 아이가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이 진정한 교육입니다."

2004년 <내가 만난 아이들>의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하이타니 겐지로 작가가 우리나라 청중들을 상대로 강연했던 내용이다. 당시 세종문화회관에 모인 초중고 선생님들은, 교육은 교사와 아이가 '함께 배우는' 것이라던 그의 교육철학에 모두 감동과 공명의 박수를 보냈었다. 당초 400석을 예상했던 자리에 1000 여명 이상이 들었던, 아이들을 향한 교육열정이 뜨겁게 넘치는 자리였다.

이렇듯 '교육'에 대해서 알고, 배우고자 하는 초심의 선생님들이 건재하는 한 우리 교육의 앞날은 푸르다.

또한 나는 그때 들었던 하이타니 겐지로 작가의 이 한 마디를, 교실에서 때때로 상기하곤 한다.

"무얼 주든 따뜻한 마음까지 함께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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