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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12.23 16:47:2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 중기의 다독(多讀) 시인 백곡 김득신(1604~1684) 선생이 청백리라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신범식 영동대 교수는 충북개발연구원 부설 충북학연구소가 23일 괴산군민회관 대회의실에서 주관한 '백곡 김득신의 그 삶과 문학'이란 주제의 학술 강연에서 신범식 영동대 교수의 지적이다.

신 교수는 한말 유학자 강효석이 만성시조(萬姓始祖)·청백리·공신 등의 인명을 열거한 '전고대방(典故大方)' 등의 문헌을 예로 들어 "백곡 선생이 청백리였다는 일부 책자와 인터넷 자료는 잘못됐다"며 "백곡 선생은 청백리가 아니라 진보적 시(詩) 의식을 갖고 주옥같은 시를 남긴 인물로 기억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또, "백곡 선생은 노둔한 천품에도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시로 일가를 이룬 인물"이라며 "한시 비평의 제기준을 마련한 비평가로 한국 한문학사에 확고히 자리매김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곡은 태어난 곳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백곡(柏谷), 괴강노옹(槐江老翁), 귀석산인(龜石山人)이란 호에서 알 수 있듯이 충남 천안,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증평군 증평읍 율리 등지에서 생활했다.

괴산읍 능촌리엔 백곡이 말년에 건축해 독서당으로 이용한 취묵당(醉墨堂·문화재자료 61호)이 남아 있고 여기서 '사기'와 '백이전'을 1억1만3000번 읽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괴산 / 남기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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