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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정치계 '큰별이 지다'

박학래 민주당 충북도당 상임고문 별세

  • 웹출고시간2010.11.28 19:24:4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박학래(사진) 민주당 충북도당 상임고문이 28일 오전 교통사고로 숨졌다. 향년 88세.

박 고문은 이날 오전 6시45분께 청주시 상당구 중앙시장 앞 횡단보도에서 A(54)씨가 몰던 시내버스에 치였다. 박 고문은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오전 8시께 끝내 숨을 거뒀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벗으로 지난해 8월18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누구보다 슬퍼했던 박 고문은 끝내 1년 여 만에 그의 곁으로 갔다.

1956년, 1960년 청주시의회 2·3대 의원과 민주당 충북지부 고문, 신정사회당 수석 부총재를 거쳐 1995년, 1998년 충북도의회 5·6대 의원을 역임한 그는 충북지역의 대표적 야인(野人)이었다.

1956년 민주당에 입당한 그는 김 전 대통령의 당선을 돕기 위해 충북 곳곳을 누볐다. 때론 정치보복의 위협도 받았다.

1981년 김 전 대통령이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12월까지 청주교도소에 수감됐을 때도 그는 옥중수발을 자처했다. 미국 망명 시기에는 김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 씨를 8개월 간 보호했다.

김 전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그는 지난해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슬픈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언제나 보고 싶고, 언제나 곁에 있고 싶었던 당신을 죽어서라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박 고문은 정치인 말고도 '목욕탕 업계의 대부'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제일탕'(남문로 1가 194)의 주인이었다. 9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일탕은 일제강점기 당시 '아사이탕'이라고 불렸다.

그는 생전에 "워낙 오래돼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대략 1955년 쯤 목욕탕을 인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 이전 아사이탕의 종업원이었다. 박 고문은 지금까지 입욕료를 다른 목욕탕의 절반 수준으로 고집했다. 7세 이하 2천원, 이상 3천원. 자신을 이 자리까지 있게 한 청주시민에게 봉사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박 고문은 제일탕 외에 석교동 약수탕, 북문로 학천탕, 봉명동 학천건강랜드를 운영하고 있었다. 시민 최모(65)씨는 "목욕탕을 갈 때마다 푸근한 인상으로 맞아줬었다"며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고 애도를 표했다.

빈소는 충북대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30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가덕공원묘지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채천식(78) 여사를 비롯해 장남 박노석(52)씨 등 3남2녀가 있다. (연락처 043-269-7211)

/ 임장규·강현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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