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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금강변서 원삼국 얼음창고 발견

초기 삼국~백제 유물 대거 발굴
백제 목관·금동신발 한쌍도 나와

  • 웹출고시간2010.11.08 19:17: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 나성리 금강변에서 원삼국시대 빙고(얼음창고)와 백제시대 금동신발 한 쌍이 각각 발굴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홍종·조치원읍 소재)는 그 동안 금강변 북쪽 기슭에 위치한 나성리 유적층에 대한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해 왔다.

행복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 금강변에서 원삼국시대 빙고(얼음창고)가 발굴 되었다.

그 결과, C구역에서 원삼국시대(3~4세기) 얼음창고를 발견했다고 8일 밝혔다.

연구소측은 발견된 터를 빙고로 추정한 이유로 △창고형 구덩이 치고는 지하가 너무 깊고 △구덩이 밑으로 자갈이 깔린 배수로가 발견됐으며 △인근에 금강이 위치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허의행 조사부장은 "겨울철 금강에서 얼음을 잘라다 이곳에 저장, 이듬해 봄까지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사료에도 이른 시기 백제인들이 얼음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말했다.

만약 이번 터가 빙고로 최종 확인될 경우 백제 빙고로는 첫 사례일 뿐 아니라, 조선시대 빙고보다 천년 이상 앞선 것이 된다.

이밖에 같은 구역에서 초기 삼국시대~백제시대 주거지 3기와 토광묘 6기, 가마 6기, 수혈유구(구덩이) 67기, 구상유구(도랑) 15기, 굴립주 건물지(기둥을 땅에 박은 건물) 12기 등 총 109기에 이르는 유구와 도로 흔적, 우물터, 목책렬 등이 확인됐다.

원삼국시대 빙고(얼음창고)와 함께 발견된 백제시대 금동신발 한 쌍

특히 이들 유구 중 한 토광목관묘(土壙木棺墓)에서는 목관이 썩지 않은 채 발견됐고, 그 안에서 5세기 무렵의 금동신발 한 쌍(사진)과 금동 과대(혁띠), 안에 칼이 든 나무칼집, 청동에 금박을 씌운 구슬류, 화살통 등 다량의 유물이 수습됐다.

무덤축조 연대는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광구장경호(廣口長頸壺) 토기로 미뤄, 한성백제기인 5세기 무렵으로 추정됐다.

금동신발 중 한 짝은 T자형 문양이 확인됐으나, 다른 하나에서는 비스듬한 격자문양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금동신발은 공주 수촌리 유적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보다는 늦은 시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사단은 목관이 잘 남아있는 것과 관련해 일대가 금강변과 인접한 습지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 최준호·조혁연기자

☞얼음창고와 금동신발 발견 의미

연기군 남면 금강변에서 발견된 원삼국시대 얼음창고는 조선시대 것보다 무려 1천년이나 올라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 생활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당시 일대에 매우 발달된 취락이 존재, 다중의 왕래가 지금의 도시처럼 많았음을 의미하고 있다. 함께 발견된 15기의 원삼국시대 도로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역사 추정'이 맞다면 △당시 사람들이 벌써 금강을 수운(水運)으로 이용했고 △이로 인해 대규모 취락이 발달했으며 △그 과정에서 얼음창고 문화도 생겨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금동신발을 제작한 5세기 무렵의 토착집단도 다양한 문화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고학계에서는 금동신발이 발견될 경우 △일대에 강력한 권력을 가진 토호세력이 존재했고 △그 토호는 인구밀도가 높은 집단을 거느린 것으로 봐왔다. 이때 토호가 사망할 경우 금동신발이 장례의식 중 부장품의 하나로 넣어졌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실제 이번에 발견된 금동신발은 당시 토호가 실제로 신기에는 다소 큰 모습이어서 주검 부장품으로 추정됐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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