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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동네목욕탕 그 때 그시절

"때빼고 광내자" 명절 북새통 옛말
청주서 가장 오래된 남문로 '제일탕'
대형사우나 밀려 추억만 덩그러니

  • 웹출고시간2010.09.19 19:15:1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입구에선 국민학생 아들의 나이를 속이려는 엄마와 주인장이 한 바탕 입씨름을, 안에선 서로 한 번이라도 몸을 더 담그려고 자리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아빠 손에 붙들린 꼬마의 등은 벌겋게 변했고, 고통을 참아낸 꼬마는 '바나나 우유'를 사달라고 칭얼댔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70~80년대를 거친 세대라면 누구라도 금방 알 것이다. 맞다. '대중목욕탕'이다. 그것도 명절 대목을 맞은.

설, 추석이면 대중목욕탕은 '콩나물시루' 그 자체였다. 1년 묵은 때를 벗기려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탕이라곤 달랑 2개. 하나는 몸을 담그는 욕탕이고, 하나는 물을 끼얹는 바가지탕이었다. 비좁은 욕탕엔 수십명의 사람들이 엉덩이를 맞대고 때를 불렸고, 이따금씩 주인장이 '뜰채'로 때 구정물을 걸렀다. 지금은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돼버렸지만.

청주 남문로 1가 194에 위치한 제일탕.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이다. 요금은 대인 3천원, 소인 2천원이다. 찜질방은 손님이 없어서 폐쇄됐다.

ⓒ 임장규기자
추석연휴를 이틀 앞둔 19일 오후, 그 때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장소는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제일탕'(남문로 1가 194). 1970년부터 '제일'이라는 이름으로, 그 전 일제강점기 때는 '아사이탕'이라고 불렸던 그곳이다. 주인과 이름, 시설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9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목욕탕이다.

이곳의 주인은 '목욕탕업계의 대부'라 불리는 박학래(88)옹이다. 워낙 오래돼 제대로 기억은 못하지만 1955년 쯤 이곳을 인수했다고 한다. 그 후 청주에서 제일가는 목욕탕이 되고자 '제일'이라는 이름을 썼는데 구청에 이 이름이 등록된 시기는 1970년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요금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70년대 초 서울 목욕탕 입욕료가 7세까지 90원, 8세부터 130원이었는데 그보다는 쌌다는 게 박 씨의 말이다. 지금은 7세를 기준으로 각각 2천원, 3천원이다. 역시 싸다. 박 옹은 현재 제일탕 외에 석교동 약수탕. 북문로 학천탕. 봉명동 학천건강랜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오래된 제일탕은 무조건 3천원을 고집한다.

카운터와 1층 여탕을 지나 2층 남탕에 들어서니 옛 풍경이 조금은 남아있다. '디귿'자로 생긴 옷장과 거울이 손님을 맞는다. 거울 밑에는 스킨, 로션, 헤어 스프레이, 헤어 드라이기가 한 개씩 있고 욕탕 입구에 체중계가 하나 있다. 그 외의 시설은 선풍기 2대가 전부다. 이른바 '때밀이'라고 불리는 목욕관리사와 구두닦이는 없다. 찾는 손님이 없어서다.



청주 제일탕 직원 박도호(66)씨가 "명절 때도 손님이 부쩍 줄었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 임장규기자
오후 5시인데 손님이 달랑 한 명이다. 직원 박도호(66)씨는 "대부분 오전에 많이 온다"며 "많이 와봤자 남·여탕 합쳐 100여명 정도"라고 했다. 경제가 어려워진 탓이다. "예전 같지가 않아요. 명절이 다가오면 하루 300~400명이 왔었는데 다 옛날 얘기죠. 전쟁터 같긴 했어도 그 때가 참 살가웠는데…"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직장인 신경수(36·흥덕구 복대동)씨는 "명절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 왔던 기억이 난다"며 "지금은 모두 대형 사우나를 찾거나 집에서 샤워를 하기 때문에 명절 대목 풍경을 보기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점차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우리네 대중목욕탕 이야기. 이번 추석, 한 번 쯤 동네 대중목욕탕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해묵은 옛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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