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품삯은 무슨… 사람만 죽어 나왔지"

영동 월전광산서 일했던 강태윤 할아버지

  • 웹출고시간2010.08.26 19:36:3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영동군 용화면 월정리 '월정광산'에서 이 마을 주민 강태윤(83)씨가 폐쇄된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바닥에 깔린 돌은 쇳물이 스며들이 빨갛게 변한 광석이다.

ⓒ 임장규기자
"하야쿠, 하야쿠!(빨리 빨리)"

금광 총 책임자 '쿠세니'는 자꾸만 소리를 질렀다. 금돌 쪼가리를 줍던 까까머리 소년은 곁눈질로 쿠세니를 봤다.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여름. 일제는 전쟁에 미쳐 있었다. 군수물자가 되는 것은 닥치는 대로 뺏어갔다. 밥숟가락 하나까지 용납하지 않았고, 전국의 광산에선 지하자원을 마구 캤다.

까까머리 소년도 광산에서 일했다. 근무지는 충북 영동군 용화면 월전리 '월전광산'. 열여섯 살 소년은 펜 대신 괭이를 잡았다. 나이가 어린 관계로 발파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쿠세니가 시키는 대로 금돌을 학교 운동장으로 날랐다. 그곳에선 마을 여자들이 금 선별작업을 했다. 조선인 덕대는 품삯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쿠세니보다 더 얄미웠다.

광산 안에서 이웃집 아저씨가 실려 나왔다. '구루마'가 전복됐다고 했다. 아저씨는 며칠 뒤 죽었고, 보상금은 나오지 않았다.

이듬해 일제 패망 소식이 들려왔다. 소년은 광산에서 뛰쳐나와 "만세"를 불렀다.

65년이 지난 지금, 소년의 머리는 하얗게 셌다. 영동군 용화면 용화리에 사는 강태윤(83)씨.

강 씨는 그 때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아직도 '왜놈'에게 시달리는 꿈을 꾼다고 했다. 그는 일본인을 철저하게 '왜놈'이라고 표현했다.

"중학교 다닐 나이였어. 마을 주민 모두가 광산에서 일했지. 말이 '유급'이지 반 강제노동이었어"

영동지역 광산에 있던 일본인들은 근로자들을 매몰차게 때리지 않았다. 말을 안 들으면 그냥 끌고 갔다. 보내진 곳은 국외 작업장. 굳이 때릴 필요가 없었던 게다.

강 씨는 일본인의 말을 잘 들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분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양군도로 끌려간 고종사촌은 해방 귀국길에서 수장됐다.

그 때 강 씨와 같이 작업장에서 일하던 마을 주민들은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만 했으니 '일병'이 안 나겠어? 다 일찍 죽었지. 왜놈들, 참 나쁜 놈들이야"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댕기더니 말을 이었다.

"더 나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우리야. 지난날이라고 덮어버리려고만 하는 우리. 다 기억해야 돼, 아주 생생히. 그래야 다시는 이런 치욕을 안 겪을 테니깐"

/ 임장규기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