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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충주에선 어떻게 살았을까

충북대 신영우 교수, 광무양안 분석

  • 웹출고시간2010.08.16 18:50: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후기 충주읍성 지도로 면이름이 다양하게 보이고 있다. 당시 가장 번성했던 면은 엄정면이었고, 덕산면에는 옴팡집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1백년 충주 사람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고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을 지녔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칸 초가집인 이른바 '옴팡집'이 상당수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소장 박걸순 교수)가 최근 학내에서 '광무양안과 충주의 사회경제 변동' 제목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광무(光武)는 건양(建陽)에 이어 대한제국 때 사용된 두번째 연호, 양안(量案)은 일종의 토지대장 문서를 일컫고 있다.

조선시대는 戶를 기준으로 부역을 부과했으나, 이때의 戶는 단순히 집의 존재유무만을 살폈다. 따라서 戶를 통해서는 당시 가옥종류, 크기, 대주(垈主)와 가주(家主) 관계 등은 알 수 없다.

이런 배경속에 이날 충북대 신영우(사학과·사진) 교수가 '대한제국 시기 충청도 충주의 주거생활' 논문을 발표, 주목을 받았다.

논문에 따르면 광무양안을 정밀 고찰한 결과, 당시 충주군 관내에는 38개 면에 총 2만3천898호가 존재했다.

이를 면별로 살펴보면, 당시 호수가 가장 많았던 면은 엄정면으로 1천222호, 가장 작았던 면은 소탄면으로 190호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2만3천여 호중 기와집은 22개 면에만 존재했고, 나머지 16개 면에는 기와집이 아예 없고 초가집만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와집을 면별로 살펴본 결과, 엄정(19채), 동량(12), 김생(7), 충주 남변·북변(6), 이안(5), 신니(3), 노은면(2) 등을 기록, 의외로 엄정·동량면에 부촌이 형성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두 면이 한강수계에 인접, 조운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院이 설치됐던 이안면 대소원에도 부호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당시 충주군 관내 기와집 비율은 전체 대비는 0.6%(147호) 정도, 이나마 민가만을 대상으로 하면 0.46% 밖에 안됐다"며 "따라서 당시 기와집대 초가 비율은 214대 1 정도로, 주거환경이 열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번 논문은 옴팡집과 특정인물에 대한 내용도 함께 싣고 있다.

고찰 결과, 당시 충주에는 이른바 1칸 초가집인 '옴팡집'이 덕산면 58채, 신석면 41채 등 무려 109채나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옴팡집은 지금도 그 성격이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나, 대체로 부엌 1개, 방 1개의 극빈자의 주거지로 추정되고 있다. 논문은 충남 태인의 윤규상(84) 옹의 증언을 싣고 있다.

'이런 집에 살던 사람들은 남의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로서 저녁에 들어와서 자고, 아침에 일하러 나갔다. 내외가 같이 나가 부인은 주인집에서 밥도 해주고 집안일을 했다. 봉급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인집에서 그 가족을 먹여살린 것이다. 남편은 농사일을 해주면서 종처럼 살았다. 1920년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나 해방이 되고 외지로 떠났다. 이들은 예전에 가마를 메거나 천한 일을 하던 사람들로서 살던 곳에서 대접을 박지 못하니까 떠난 것이다'.

신교수는 특정 인물과 관련해서는 "당시 심상훈은 엄정면, 김갑규는 동량면에 주소를 뒀다"며 "심은 청나라 군대를 끌여들여 개화파를 격파한 인물이고, 김은 세도가로서 효현왕후의 친정 장손"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는 '대한제국기 충주군 양안의 지주제와 농민층 분해'(최윤오·연세대), '광무양안에 나타난 충주군 율지면 남창마을'(강은경·충북대) 등의 논문도 소개됐다.

/ 조혁연 대기자

☞ 양안

조선시대에는 법제적으로 20년마다 한 번씩 전국적으로 토지측량(量田)을 실시하였고, 이를 토대로 양안을 작성, 호조(戶曹)와 해당 도(道) 및 군·현에 각각 1부씩을 보관하도록 했다. 그러나 양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십년 내지 100여 년만이 보통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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