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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11.14 00:00:0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해방직후, 청주여고를 졸업한 나의 고모는 서울대를 가겠다고 떼(?)를 썼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에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고 할머니는 펄쩍 뛰었다. 그것도 여느 대학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니 할머니의 걱정은 이만 저만한 게 아니었다.

시험 당일, 할머니는 일부러 떨어지라고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그 눈물의 미역국을 먹고 새벽 열차로 상경한 고모는 여보라는 듯 서울대에 합격하였다. 시골동네가 생긴,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할머니는 축하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기쁨 반, 걱정 반이던 할머니는 오랜 장고 끝에 재산목록 1호인 황소와 산 다랑이 논 몇 마지기를 팔기로 했다. 보릿고개에 찔레 순을 꺾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대학에 보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상아탑이 우골탑이 된 것은 실로 오래전 부터였다.

내 낭군 알성급제를 성황님께 빌고 빌던 조선시대의 아낙은 아침저녁으로 정안수를 떠놓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고된 시집살이에 짠지 쪽 같은 눈물을 수도 없이 흘렸지만 훗날 정경부인, 숙부인의 꿈을 남편의 과거를 통해 이루자며 온갖 아픔을 감내했다.

청운의 꿈을 안은 남도 선비들은 추풍령, 괘방령, 조령, 죽령을 넘어 한양에 이르렀다. 이때에도 입시에 대한 터부가 있었다.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이 된다하여 한발치를 돌아 과거에 합격한다는 괘방령으로 길을 잡았다. 소맷자락에는 좁쌀 책과 함께 어해도(魚蟹圖)를 한폭 지녔다. 물고기 그림인 어해도를 간직하면 과거에 붙는다는 속설이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수능격인 초시(향시)에 합격하면 생원, 진사가 되는 것이고 대과에 급제해야 비로소 벼슬길로 나갈 수 있었다. 대과에 1등으로 붙으면 장원급제요 임금이 직접 주재하는 알성시에 급제하면 알성급제라 불렀다. 과거는 사림(士林)이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또 입시철을 맞았다. 수험생들이 서울대를 의미하는 S자를 수집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소나타 승용차의 엠블럼이 수난을 겪거나 여학생 방석이 없어지는 해프닝도 한때 유행했다. 시대가 변해도 없어지지 않은 풍습은 합격 엿과 찹쌀떡이다. 그런데 요즘은 합격선물을 택배, 인터넷으로 보내는 일이 잦다고 한다. 합격을 빌어주는 고마운 마음이야 탓할 게 없지만 그 합격 선물세트도 5만 원에 이르고 있다하니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산사와 암자에는 합격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이 잇달고 있다. 자식의 시험 앞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애타는 모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 기원 속에는 혹시 “딴 아이야 어찌됐든 우리 아이만 붙으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이기심이 작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입시는 그 속성상 응시생 모두를 합격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합격하는 학생 이면에는 불합격에 우는 수험생도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붙으라는 대승적 기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당에 촛불 밝히고 내 아이 잘되기만을 비는 것은 분명 소승적 태도다. 오히려 그러한 발원이 수험생에게 입시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경쟁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이기적 기원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무리하게 쳐다보며 발복을 기원하는 것 보다 각자의 실력에 맞는 대학, 학과를 지원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고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시험은 남과의 경쟁이전에 나와의 싸움이요, 타협이다. 부디 본인의 눈높이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여 무리 없이 좁은 문을 통과하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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