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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11.07 00:01:2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아리랑은 영원한 한국인의 향수다. 아리랑은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담은 국민가요다. 지금까지 시간 장소를 막론하고 아리랑처럼 많이 불러진 노래는 없다. 한일 월드컵에서도 붉은 악마들은 아리랑을 응원가 삼아 합창하였고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때에도 아리랑을 서럽게 서럽게 부르며 혈육의 정을 확인했다.
아리랑이 이토록 국민 애창곡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인의 영원한 노래로 회자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리랑만이 담고 있는 한국인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는 정(情)과 한(恨)으로 대변된다. 영어로도 번역이 곤란한 이 별난 정서는 수 천 년을 이어져오며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무슨 정과 한이 그리 많길래 시도 때도 없이 범민족적인 정서가 아리랑으로 형상화되며 그리움이라는 폭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것일까. 참았던 눈물, 서러움 등 아픔의 요소들이 내재되고 응축돼 있다가 어느 시기를 만나면 화산처럼 분출되고 마는 것이다.
북방 유목민족과 달리 농경정착문화를 가진 우리는 늘상 피붙이와 이웃을 확인하고 사는 한솥밥 공동체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그 평화의 밥그릇은 이민족의 침입이나 어떤 정치적 사회적 변수로 번번이 깨어지면서 정과 한을 파생시켰다. 헤어진 피붙이에 대한 그리움, 이민족의 침략에 대한 분노, 기약 없는 이별과 만남에 대한 서러움과 기대치가 복합, 응축되어 아리랑이라는 국민가요를 오래전부터 탄생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아리랑이 수도 없이 많이 산재해 있다. 긴 아리랑을 비롯하여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가장 많이 불려지고 있으나 이외에도 수 백 종을 헤아리고 노랫말의 변종까지 합치면 수 천곡에 이른다. 게다가 아리랑 곡조를 골격으로 하는 요즘의 창작곡까지 합치면 그 숫자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우리나라가 아리랑의 천국임에도 국토의 중심부에 있는 충북에 아리랑이 없었다는 것은 매우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어째 아리랑이 없었을까. 아리랑 역시 농요일진대 충북에선 실종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해답은 의외로 충북의 이민사에서 찾아졌다.
1938년, 만척주식회사는 충북에 사람을 파견하여 이주민을 모집하였다. 일제의 침탈에 멀미가 난 사람들은 조밥이라도 실컷 먹어볼까 해서 정든 고장을 떠났다. ‘북간도의 감자는 물동이만 하드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도 나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 180세대가 만주로 향했는데 대개 청주, 보은, 옥천 사람들이었다. 이중 왕청현 대흥구로 100세대가 가고 80세대는 두만강에서 20여리 떨어진 도문시 양수진 정암촌에 정착했다.
그들은 손발이 부르트도록 황무지를 일구며 노동의 고됨을 청주아리랑으로 달랬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울 너머 담 너머 님 숨겨 두고/ 난들난들 호박잎이 날 속였네.../ 시아버지 골난 데는 술 받아주고/ 시어머니 골난 데는 이 잡아준다/ 새애끼가 골난 데는 엿 사다주고/ 며늘애기 골난 데는 홍두깨 찜질/ 아리랑 타령이 얼마나 좋은지/ 밥 푸다 말고서 엉덩춤 춘다...”
이민의 봇짐에서 나온 청주아리랑은 이렇게 전승되었고 연변 김봉관 씨가 처음 채보하였으며 이곳을 답사한 임동철 충북대총장(당시 국문과 교수)이 지난 1993년 이를 찾아 소개한 것이다. 청주에서는 막상 이를 잊어버렸는데 70년 만에 난데없이 이민사에서 찾아진 것이다.
오늘날, 청주 모 국악원에서는 이를 가르치고 있으며 청주 MBC에서는 청주아리랑 CD를 제작했다. 이번에는 청주아리랑이 연극무대에 올려져 한으로 얼룩진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보여줬다. 극단 ‘늘품’은 11월 2~4일 문화공간 너름새에서 ‘잊혀진 귀향의 소리-정암촌의 청주아리랑’을 공연했다. 천은영작, 연출로 충청도 민초들의 아픔과 끈질긴 생명력을 되새겨 보는 무대였다. 다시 불러보는 청주아리랑은 이처럼 꺼지지 않은 영혼의 불로 우리의 가슴을 덥히며 충북인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임병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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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