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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푸른 하늘과 오색단풍, 그리고 선들선들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일상생활에서 탈출하고픈 일탈의 심정을 부채질한다.
계절의 감각도 모르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성찰이 가을만 되면 실눈을 뜨는 것이다.
가난한 마음을 영글게 하고 싶은 욕망도 가세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남도기행 시사랑 열차’였다.
기차도 타보고 싶고, 흔들리는 차창너머로 볏가리 쟁여놓은 가을 들녘도 바라보고 싶고, 김밥이나 삶은 계란도 먹고 싶었다. 동행하는 탑승객은 140여명에 이르렀다.
아침 일찍 조치원역을 출발한 ‘시 사랑 열차’는 호남선을 타고 남도 천리 길을 재촉했다.
남행열차엔 허형만 시인(목포대 교수)을 비롯하여 임승빈 시인(청주대 교수), 김창규 시인 심억수 시인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열차 안에서는 춤과 노래대신 릴케의 시, 허형만 시인의 시 등이 낭송되었고 허 시인의 펜 사인회는 남행열차처럼 꼬리를 물었다.
이 열차엔 ‘봉숭아 선생님’ ‘마술 선생님’으로 통하는 오하영 씨가 탑승했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을 했지만 열정만은 아직 청춘이다. 간단한 마술과 함께 풍선으로 하트모양, 강아지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줬다. ‘봉숭아물들이기’도 별난 이벤트였다.
오 씨는 1백40명에게 전부 봉숭아물을 들여 주었다.
그의 냉장고에는 항상 봉숭아 물감이 사시사철 준비를 하고 있다. 문득 고향의 장독대 생각이 난다. 나보다 세 살 위인 누님은 뒤뜰 장독대에서 나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주었다.
장독대 주변의 봉숭아 꽃잎을 따서 백반, 소금 등을 넣어 찧은 다음 짓무른 덩어리를 손톱에 얹어놓고 봉숭아 잎으로 손가락을 쌓아 실로 매어주던 기억이 새롭다.
봉숭아는 매니큐어와 달리 색깔이 은은하다.
그러면서도 손톱의 호흡을 막는 일이 없다. 봉숭아물이 지워질 때면 대개 첫 눈이 내리고 또 첫 사랑을 만난다던가. 봉숭아물은 천연염료이기도 하지만 그 붉은 색깔은 치장과 더불어 악귀의 범접을 막는 벽사(?邪)의 뜻도 지니고 있다.
차창너머론 누런 황금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늦장마와 태풍으로 벼 포기가 쓰러진 곳도 있지만 옹골차게 여문 곡식들이 가을바람에 춤을 추며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자연은 위대하다. 봄에 뿌린 씨앗을 싹틔워 키우고 어김없이 열매를 맺게 하니까 말이다.
사람도 가을이 되면 곡식처럼 영글어야 하는데 마음의 밭이 척박하여 늘 쭉정이 신세다.
사실 육체적인 영양소 부족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영양실조다. 각박한 생존경쟁에 부대끼며 살다 보니 마음을 살찌울 여유가 별로 없다.
이 가을엔 실종된 시심(詩心)을 찾아내고 녹슨 마음을 가을바람에 헹구어 내어 정신적이나마 부자가 되고 싶다.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는 사이 열차는 목적지인 순천에 도착했다.
공업적 기능은 여수나 광양에 내 주고 교육 문화적 기능을 극대화하는 순천시이다.
순천고 교정에는 허형만 시인의 시비가 서 있고 우리는 시비가 있는 그 야외 교실에서 시를 낭송하며 허 시인의 문학강연을 경청했다.
순천시는 충청도 먼 곳에서 손님이 왔다하여 버스 3대를 무료로 내주고 도우미를 배치한 가운데 곳곳을 안내했다.
순천의 관광 백미는 역시 ‘순천만 갈대밭’이다. 갈대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벌에서 자란다. 그곳을 개발하지 않고 다만 갈대밭 사이로 나무 통로를 내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나무통로는 일방통행이다. 쌍방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관광인파가 빼곡하다. 갈대밭을 스치는 바람이 가을을 연주한다. 하늘에는 흑두루미, 백로, 저어새가 군무를 춘다.
순천시는 매년 이맘때쯤 갈대밭 축제를 연다.
자연이 빚어내는 화음을 듣고 보노라니 시심과 청정심이 생기는 듯하다.

/임병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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