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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10.09 22:07:0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선 5백년을 통틀어 국문학의 최고봉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송강 정철이다. 소용돌이치는 당파 속에 서인의 영수로 정계 출사와 은퇴, 그리고 가사문학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기까지 송강의 생애는 정치인과 문인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들었다.
강원관찰사로 나가 있을 때 지은 관동별곡은 송강가사문학의 백미이며 이외에도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사 등은 절창으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조, 한문학에 있어서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재 너머 성권농(成勸農)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바로 차서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농(勸農) 계시냐 정좌수(鄭座首) 왔다 하여라“ 강직한 선비였으나 낭만과 풍류의 문인이었던 터에 그의 작품은 정제돼 있으면서도 생활 속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고교 기말고사나 대학 입시에서 그의 작품이 수도 없이 등장할 정도여서 수험생들이 늘 필독서로 간직하고 읽던 작품들이다.
그와 쌍벽을 이뤘던 고산(孤山) 윤선도의 작품이 여성적이고 섬세하고 정감어린 필치라면 송강의 작품은 남성적이고 선이 굵고 호방한 면이 있다고 김갑기 동국대 교수는 평했다. 송강은 충북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충북 땅에 묻혀 있고 2007년도 ‘충북을 빛낸 올해의 역사인물’로 선정된 까닭에 그의 문학세계를 다시 음미해보면서 이를 선양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보는 것이다.
정철은 서울 장의동에서 태어났고 은둔생활은 전남 담양 창평에서 주로 하였으며 묘소는 진천군 문백에 있다. 여기에는 정송강사 사당과 송강기념관을 지어 그의 생애를 기리고 있다. 현재 연일정씨 문중에서 이를 관리하고 있다.(충북도기념물 제 9호)
정철과 충북지역의 깊은 인연은 생전보다 사후에 맺어졌다.(충북개발원, 올해의 역사문화인물) 충북지역에 남겨진 그의 자취는 괴산 읍취루에서 노닐며 지은 한시 6수가 있고 쌍곡 계곡에서는 이황이나 정철이 찾아와 노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철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군 신원에 있는데 1665년, 서인의 정치적, 학문적 정통성을 계승한 우암 송시열이 정철의 후손인 정포(鄭浦)와 상의하여 무덤을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사우와 신도비를 건립하였다.
한국문화원연합회충북도지회(지회장 박영수)는 송강 문학의 재조명을 절감하면서 지난 5일 진천문화원 주관으로 ‘송강 정철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연 것이다. 임동철 충북대총장은 이 자리에서 “송강의 묘소가 이곳에 있고 장암(丈巖) 정호(鄭澔) 등 후손이 세거하고 있기 때문에 추모제 차원을 넘어, 그의 문학 혼을 기리는 지역축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홍은 충북문인협회장은 “경기도 고양에서는 송강 정철 문학축제가 열리고 있고 전남 담양에서는 ‘열린 가사문학의 밤’도 열리고 있다”며 우리고장에서도 선양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많은 사람들은 행정당국과 문중, 그리고 충북문인협회 등 지역인사들이 연계하여 송강축제를 만들자고 입을 모았다.
의기만 투합 된다면 전국 또는 지역 규모의 ‘송강 백일장’ ‘송강 문예작품 공모’ 사우 일대에서 ‘과거’ 실시, 송강학회의 결성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원로 이상록 씨는 “지난 1958년, 종손의 고택에서 은배와 옥배, 그리고 보자기에 쌓인 두루마리 문서를 본 기억이 있다”고 술회했다. 정철이 명나라 황후로부터 하사받은 옥배와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복숭아 모양의 은배는 현재 문백 봉죽리 어은마을에 사는 종손 정구성씨가 소장하고 있다. 선조는 은배를 송강에게 내리며 하루에 술을 이 잔으로 석잔 씩만 마시도록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향은 고양에, 정신적 고향은 담양에, 유택은 진천에 있는 송강의 인생행보를 한데 엮어 3곳 동시 개최라는 문학축제의 공통분모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임 병 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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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