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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세상이여!”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번쯤 듣게 되는 요즘 말씀이다.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겠지만 대개 속도와 관련이 있다. 아침에 청주서 출발, 점심 때 제주에 도착했노라고 말씀 드리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신다. 청주공항이 개항되면서 생긴 일이다.

지난 주말 늘 꿈틀대던 욕구를 충족시켰다. 벼르고 벼르던 제주도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봤다. 남한 최고봉이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20년 전 신혼여행 때 영실 쪽에서 오르다 만 기억 때문에 미련이 늘 있었다.

마침내 욕구충족의 기회가 생겨 장마라는 심각한 경고에도 강행했다. 날씨는 예상외로 쾌청했다. 성판악∼진달래대피소∼백록담∼용진각대피소∼삼각봉∼탐라계곡∼관음사 코스를 택했다. 도상거리 18.5km다.

해발 1천400m부터 형성된 구상나무 군락은 장관이었다.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제주출신 고 고상돈씨를 기리는 돌무덤(케른)이 있는 장구목 능선은 늠름했다. 하산길에 바라본 백록담 북벽은 웅장했다.

그러나 등산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이다. 스치는 인연과의 짜릿한 느낌 때문이다. 새롭다 보니 자극적이어서 더욱 좋다. 자주 낯선 산길에 오르다 보니 사람만 보면 분석하려 드는 중독증일 수도 있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어떤 울림 같은 것이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걷는 자의 미덕’ 같은 것이다. 만난 사람의 여정을 좇다보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공유할 ‘코드’가 있을 법하기에 기대 또한 커진다.
산꾼들은 그저 말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항상 자문한다. 무엇이 나를 산으로 이끈 것인가.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잠에서 깨자마자 산에 오르게 하는 걸까. 답은 언제나 같다. 목표를 정했으니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다.

그러나 등산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엄청난 거리의 무게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다행히 산은 가야할 길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는다. 시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기껏 1시간 분도 안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머나먼 목표거리를 시간단위로 미분하고 걸어간 거리를 적분하다보면 목표점에 이른다.

산에 오르는 것도 ‘로드맵’이 있어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등산 전 지도를 챙기고 안전장비를 챙기는 것도 그 날 산행의 실패를 줄이기 위한 일종의 로드맵 준비 과정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호시우행(虎視牛行)’을 할 수 없다. ‘자아형 인간’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없다.

대한민국 참여정부의 여정을 살펴보자. 개혁청사진을 담았던 숱한 로드맵들은 어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산에 오르기도 전에 휴지통에 버려졌거나, 목적지가 바뀐 듯하다. 로드맵은 무수히 생산됐지만 지도만 있고 여행은 없었다.

산을 오르는 것은 잊고 있던 자신과 만나는 작업이다. 힘들게 산을 오르면 산은 자기 자신과 직면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육체의 제약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켜 준다. 그래서 몸의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걷다보면 삶의 기운을 다시 차리게 된다.

그러나 등산을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안전을 위해 사전에 상당한 경험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지형과 기후조건이 위험한 산을 오르는 행위다. 따라서 위험은 등산이 갖추고 있는 고유한 속성이다.

등산가로 일컬어지는 산꾼들은 이러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용기·기지·기량·체력·능력·정력 등을 시험하며 짜릿한 전율을 맛본다. 강렬한 개인적인 노력, 꾸준히 숙달되는 기술, 웅장한 자연과의 접촉 등이 가져다주는 육체적·정신적 만족에서 등산의 즐거움을 느낀다.

정치에서 개혁도 산을 오르는 행위와 같다. 개혁가는 우선 등산가 같은 용기와 기량 등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실천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우선 땅에 발을 딛고, 우직한 걸음으로 한걸음씩 나아가야 가능하다. 그래야 들머리의 설렘이 아니라 날머리의 기쁨을 알 수 있다.
/ 함 우 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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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