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1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며칠 전 반가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편지 봉투를 뜯어보고 가슴이 아렸다. 오랜 세월 무심함에 대한 일종의 죄스러움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은사님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사랑이 배어 있었다. 반가움과 뭉클함, 죄스러움 등 여러 감정이 반복됐다. 정말 행복했지만 정말 죄송했다.

편지의 첫머리는 얼마 전 열린 동문체육대회에서 제자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서운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 날 참석치 않은 다른 친구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제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듬뿍 묻어있었다.

하헌용 선생님, 그의 이름 석자는 제자 사랑으로 유명하다. 편지 쓰는 선생님으로 제자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름이다. 제자가 나뿐 만은 아니다. 그래도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와서도 과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살았다. 너무 죄송하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선생님의 제자사랑법이다. 어느 해 아침 그는 반송돼 온 편지를 받았다. 10년 전 가르쳤던 제자에게 보낸 편지였다.

그는 서둘러 동사무소를 찾았다. 거기서 제자의 바뀐 주소를 알아내 다시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고3 수험생 제자의 일탈을 걱정하고 용기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 제자는 지금 대학생이 됐다.

그는 한 해 동안 보통 400여통의 편지를 제자들에게 보내곤 했다. 지금은 300여통으로 줄었지만 줄잡아 하루에 한통씩 쓰고 있는 셈이다.

나이 여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곧고 바르게 성장하길 기원하는 희망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곤란함에 처한 제자들에겐 격려의 내용도 함께 전하고 있다. 그는 모든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제 눈도 어둡고 힘에 부쳐 다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그는 술을 한 잔도 못 마신다. 그러나 제자들이 부르는 술자리엔 시간에 관계없이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40년을 한결같이 제자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게 했을 것이다. 답장이 없는 제자들의 안부가 걱정스러우면 주변을 통해 확인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고 있다. 편지를 받았다는 전화를 받기라도 하면 금방 어린아이처럼 기뻐한다.

그러나 40년 넘게 해 온 편지쓰기로 인해 정작 자신의 아들과 딸에겐 소홀한 아버지로 살았다. 지금은 장성해
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과 딸이지만 원망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스무 살에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부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젊은 혈기 때문인지 매로 사랑을 표현하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엔 항상 사랑이 똬리를 틀어 서운함은 금방이었다. 그런 사랑의 매를 맞고 자란 제자들의 나이가 벌써 지천명에 가깝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스승의 날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훌륭한 옛 스승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해 주는 것도 큰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본분에 투철한 참스승이 필요하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는 점차 무너져 가고 있
다. 슬픈 일이다. 참스승을 원하지만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언제나 따스한 햇살처럼 제자들의 마음을 비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 째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만큼 선생님의 말 한 마디는 큰 힘을 갖는다. 어눌해도 좋다. 진실함이 값지기 때문이다. 하헌용 선생님의 사랑법도 다르지 않다. 그가 보낸 한 줄의 글은 절망하고 있는 제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주변을 잊고 사는 제자에겐 관심을 만들어 줬다.

동백꽃의 낙화는 장렬함에 비유되곤 한다. 마지막까지 아름답기 때문일 게다. 40여년의 교직 정리를 3개월여
앞둔 선생님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함우석 / 논설위원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