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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03.21 07:24: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시대는 인물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세상이 험할수록 새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게 되는가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어떤 세상일까? 태평성대가 아니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시대가 갈구하는 새 지도자는 어떤 모습일까. 올 연말로 다가오는 대선의 쟁점도 바로 이런 문제일 것이다. 시대는 분명 새로운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는 변혁기인데도,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해야 하는 정치권은 민심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변혁기를 헤쳐 나갈 지도자는 어떤 인물인지, 그 자격과 선출 방법을 놓고 고민을 해야 마땅한데도,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권력을 잡느냐는 문제로 논쟁만 벌이고 있다. 과연 정치권이 소모적인 정쟁만 거듭해도 좋을 만큼 한가한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지금처럼 힘든 세상일 때는 언제였고, 그때마다 어떤 지도자가 출현해서 어떻게 세상을 바로 잡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6.25전란 이후 50여 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단연 5.16과 10.26직전, 그리고 참여정부 말기인 현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5.16직전이 위기라고 하는 이유는 6.25의 전흔이 아물지 않은 상태인데도 반공태세는 해이될 대로 해이된 데다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데모가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질서는 박정희라는 새 지도자를 낳게 만든 토양이 되었으며, 군사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명분까지 제공한다. 박정희는 가난을 물리치는 위업을 남겼지만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그늘도 남겼다.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공권력으로 분열된 국론을 한곳으로 집약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개발독재시대’라고 부른다. 혁명초기엔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인권을 따질 여유가 없었지만 등까지 따뜻해지자 자유가 가난보다도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국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는 게 그 시대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고, 그런 지도자를 갈망하는 분위기가 잘 살게 되었다는 만족감을 압도하고 만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은 YS와 DJ라는 야당 지도자를 탄생시켜 정치거목으로 성장시키는 토양이 되었으며, 10,26이란 정변을 계기로 문민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YS와 DJ는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문민정부를 수립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군사문화를 일거에 종식시키지는 못했다. 일개 정권이 청산을 하기에는 군사정권의 잔재는 너무 짙게 배어있었다. 이런 일을 가장 과감하게 한 게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다.

문제는 어느 분야든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수십 년 동안 쌓여진 권위주의를 일시에 청산하다보니 또 다른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 무질서를 적기에 바로잡지 못하고 쌓이게 되면 혼란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혼란은 어떤 인물이 나와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이치는 저울추와 같은 것이다. 권력으로 국론을 결집하면 안보는 튼튼해지고 경제도 살릴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다시 인권을 강조하다 보면 다시 무질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라면 결론도 간단하다. 다음 대통령은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국론을 결집해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경제도 살릴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민주화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박정희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으면서도 노무현처럼 탈권위적인 인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대선후보들 가운데서 이런 인물을 선별한다는 건 쉬워 보인다. 문제는 천운까지 타고나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시대가 갈구하는 지도자는 많지만 누가 천하를 평정할 지는 천기에 속하는 사항인지도 모른다.

최 종 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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