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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밀레니엄을 분수령으로 우리 사회는 디지털 문화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종래의 아날로그 문화가 디지털 문화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20세기를 지배해온 아날로그 문화는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불행히도 지구상의 인류는 조지 오웰의 우려대로 거대한 기계의 통제아래 놓이게 됐다. 각종 첨단장비를 갖춘 그 기계는 개인의 밀실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다. 사람은 개인마다 비밀이 있고 또 자기만의 밀실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온통 폐쇄회로에 알몸을 내놓고 있다. 외부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출근하여 퇴근 때까지 얼추 따져보아도 CCTV에 10번 이상은 찍힌다.

사이버 바다에서 무한정 정보를 얻고 디지털 문화에서 여러모로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이 됐지만 그로 인해 프라이버시가 증발하고 밀실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인간화 역작용이 삼투압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다.

이제 컴퓨터 없이는 현대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이들 역시 놀이문화가 컴퓨터 속에 있다. 책과 같은 주변의 아날로그를 팽개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정신이 없다.

인류의 역사는 과거만을 고집해서도 곤란하지만 지나간 것은 낡은 것이라고 해서 폐기처분해서도 안 된다. 과거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미래도 없다. 따라서 과거의 좋은 점은 계승하고 이를 밑거름으로 새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며 이 막중한 임무는 이제 신세대가 맡아야 한다.
청주문화원은 이러한 맥락으로 매년 7월이면 중학생을 대상으로 전통문화체험교실을 열고 있다. 체험학습 후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 문화가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인 줄 몰랐다며 앞으로 적극 참여하고 싶다는 응답이 90%이상을 차지한다. 어른들의 잘못된 선입견으로 전통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못한 아이들의 반응인 것이다.

전통문화는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유지해주는 무형의 버팀목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생활의 지표인 것이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우리 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면 촌놈 취급을 당하고 선진 외래문명을 전파해야 유식해보이고 잘나 보이는 그릇된 인식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성세대의 의식마저 디지털화문화에 뒤처지면 시대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으므로 컴퓨터 자판을 정신없이 두드리는 아이들을 나무랄 처지도 못된다. 컴퓨터에 중독된 일부 아이들은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죄의식 없이 이와 관련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발전의 단계이지만 하나는 사라져야 할 대상이고 또 하나는 발전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어차피 인류사회는 오프라인에서 시작된 것이다.

로마는 전통문화를 먹고 산다. 콜로세움, 카타콤, 트레비 분수 등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다. 골목길까지 볼거리 문화유산으로 가득하다. 전통을 잘 지켜온 덕분에 그 후손들은 굴뚝 없는 관광 사업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높은 국민소득을 영위하고 있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하는 식의 개발 독재로는 볼거리가 없어 관광 한국을 지향할 수 없다. 우리 것이 자꾸 없어지고 그 자리에 맨해튼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 판이므로 이제 한국의 가옥문화를 서구인에게 별로 보여줄 게 없다.

전통문화 중에서도 알짜배기는 필히 계승해야 한다. 그 몫은 기성세대, 청소년 모두에게 있다.

권 영 애 / 청주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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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너 소사이어티 충북 72번째 회원' 변상천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

[충북일보] "평범한 직장인도 기부 할 수 있어요." 변상천(63) ㈜오션엔지니어링 부사장은 회사 경영인이나 부자, 의사 등 부유한 사람들만 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1월 23일 2천만 원 성금 기탁과 함께 5년 이내 1억 원 이상 기부를 약속하면서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충북 72호 회원이 됐다. 옛 청원군 북이면 출신인 변 부사장은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 소작농 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의 집에는 공부할 수 있는 책상조차 없어 쌀 포대를 책상 삼아 공부해야 했을 정도로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삼시 세끼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아버지는 살아생전 마을의 지역노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했다. 변 부사장은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왔다"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옥천군청 공무원을 시작으로 충북도청 건축문화과장을 역임하기까지 변 부사장은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아지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