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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시민이라면 누구나 가로수 길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고교시절,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시작되는 사창동 간선도로 변에서 하숙을 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하숙생'이 크게 히트할 무렵이다. 그때에도 조치원으로 향하는 청주 가로수 길은 청주시민의 나들이 길로 답답증을 풀어주는 포근한 쉼터였다.

한 번은 반 대항 교내마라톤이 열렸는데 최준상이라고 하는 친구가 우리 반 대표로 출전하겠다고 떼를 썼다. 그 친구의 달리기 솜씨가 검증되지 않아 다른 친구들은 시큰둥했지만 더 이상 준족이 없어 그를 반대표로 내보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돈 후 가로수 길을 따라 휴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단축 코스였다. 준상이는 출발 전의 큰소리에 맞게 1등으로 씩씩하게 달려 나갔다.

학교 앞 가로수 길로 응원을 나간 우리 반 친구들은 "준상이가 일을 낼 것 같다"며 플라타너스 잎 새 같은 손을 모아 손 벽을 치며 응원을 했다. 준상이는 길가에 도열한 가로수의 사열을 받으며 둥근 숲을 헤치고 나갔다. 새 봄을 맞아 새 순을 내민 플라타너스에서는 알싸한 봄 향기가 길을 따라 번져나갔다. 준상이는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했다. 반환점까지 1등으로 달리던 준상이는 점점 체력이 떨어졌고 급기야 선두를 내주더니 골인지점을 불과 몇 십 미터 앞에 두고 쓰러지고 말았다.

가로수 길은 데이트 코스로 제격이었다. 아지랑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아늑한 길을 따라 미호천 미루나무 숲으로 천렵이나 소풍을 가는 청주시민이 줄을 이었다. 더러는 죄 없는 '땡칠이'가 미호천 다리 난간에서 토사구팽을 당하기도 했다. 가로수 길은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좋았다. '자전거 하이킹'이라는 콩글리시를 써가며 젊은 남녀가 '삼천리호'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렸다. 비록 2차선이었으나 가로수 길은 청주시민을 넉넉하게 받아들였다. 청주~조치원을 수시로 오가는 마이크로 승합차가 경적을 울려대고 검은 연기를 뿜어대도 하이킹 족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어났다.

1970년도 말, 충북도 경찰국장(충북도경찰청장에 해당)으로 박재식 씨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경찰국장이면서 이름 난 수필가다. 집무실에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늘 두고 이를 사표(師表)로 삼던 목민관이었다. 한번은 그가 청주지역 문인들과 함께 가로수 길을 지나 미호천 미루나무 숲으로 소풍을 갔다. 그때 미호천 둔치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했다는 미루나무 수천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대통령의 하사목(下賜木)이었기에 관리인이 지키거나 경찰이 배치되기도 했다. 문인들과 이 숲으로 향하던 박 국장 앞에 돌연 경찰이 나타났다. 점퍼차림을 한 자기 상사를 알아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경찰은 경찰국장의 출입을 막았다. "이 숲은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한 나무이기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경찰의 제지에 박 국장은 "경찰이 안 된다니 다른 곳으로 갑시다" 박 국장은 언짢아하는 기색도 없이 미소를 지며 야유회를 할 만한 다른 곳을 찾았다.

1980년대에 청주대 연극영화과에 출강하던 김수용 감독은 극예술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만추'라는 영화의 상당부분을 이곳에서 찍었다. 낙엽 흩날리는 가로수 길이 이 영화의 콘셉트에 잘 맞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인(김혜자 분)의 버버리 코트 자락으로 낙엽이 흩날리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바람이 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김 감독은 대형 선풍기를 동원하여 낙엽을 날리며 이 장면을 촬영했다.

가로수 길은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다. 연두색~진초록~흰색으로 색깔 이어달리기를 하는 이곳엔 언제나 연인들의 이야기가 숲 속에서 새어 나온다. 봄이 오면 연두색 새싹이 봄소식을 전해주고, 여름이면 짙푸른 나무 잎 새가 햇빛을 막아주며, 가을이면 큼지막한 낙엽이 연인들의 입맞춤을 가려주고, 눈 덮힌 겨울엔 눈 터널이 설국(雪國)의 정취를 빚어낸다. 지난 1953년, 강서면장을 하던 홍재봉(洪在鳳)씨가 경찰서에서 묘목 1천600그루를 얻어다 심은 것이 이처럼 거목이 되어 청주의 명물이 된 것이다. 제주도의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전국적으로 역사문화 탐방코스가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는데 기실 청주 가로수 길은 이런 아름다운 길의 원조가 되는 셈이다.

청주시는 이 길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기존 4차선을 6차선으로 확장하고 폭 4.4m의 산책로와 자전거 길을 만들었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도 기존552 그루에다 364그루를 더 심어 운치를 살렸다. 또 강서초등학교와 휴암 교차로 주변에 엘리베이터를 갖춘 육교도 세웠다. 청주시민의 추억이 서린 그곳이 명품 가로수 길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디 청주시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잘 챙기는 가로수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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